건축사사무소는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 전문적인 사항에 대해 법규 및 행정절차를 설명하고 건축주를 대신해 업무를 진행한다. 그러나 경쟁 심화로 무료 서비스가 증가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일부 업무가 수주를 위한 활동으로 여겨진다. ‘가설계'라는 단어는 이러한 문제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가설계는 ‘가짜 설계'라는 의미로, 비용 없이 업무를 진행해 대안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규모 검토나 계획설계 비용을 설명하면, 다른 건축사는 무료로 해준다는 답변을 듣는 경우가 많다.

협회 게시판에 규모 검토 단계를 협회를 통해 등록한 후 진행해 대가 없는 업무를 하지 말고 대가가 지불되도록 하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있다. 대가 없는 가설계 때문에 건축사 업무 전반이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초부터 취약하고 흔들리는 건물처럼 느껴진다.

여느 건축사에게는 쉽게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수주를 위한 전략일 수 있으나, 대가 없이 전문적이고 과학 및 기술이 집약된 일을 진행해주는 것이 사회의 풍토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공사비 요율 대가 방식과 실비 정액 가산식에 따른 업무 대가 산정 방식 등 다양한 업무 대가 산정 방식이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설계비를 제시하면 적절한 경쟁이 어렵다. 평당 설계비라는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과격할 정도로 대충 산정하는 방식은 용도와 규모에 따라 최소한의 설계 도서를 작성해 업무를 처리하고,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고민과 디자인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국토 전반이 개발되고 수많은 건물이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질 때는 이러한 산정 방식이 적용되었겠지만, 기준에 의한 산정 방식에 비하면 1/5, 1/10 수준밖에 되지 않는 평당 설계비가 적용되는 경우를 보면 가혹한 느낌이 든다.

설계 변경과 추가 업무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가? 통상적인 수준에서 건축주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 도서가 변경되는 것을 넘어서, 많은 설계 변경과 추가 업무가 발생할 때 이에 대한 업무 대가를 적절하게 산정해 받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설계 업무를 열심히 진행한 후 계약서에 명기된 비용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축사 개인이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거나, 법률적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 큰 금액이 아니면 중단되거나 완료된 업무에 대한 비용 지급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건축사들이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 이유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경쟁 속에서 가치를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 누군가는 최소 금액으로 업무를 진행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사업체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모두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구습은 버리고 폐단을 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