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저/ 학고재
앞의 책 ‘그늘에 대하여’에서 언급했던 대로, 일본의 대표적 탐미주의자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최순우’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그의 전집 중, 가장 한국적 감수성을 지닌 글들을 엮은 단행본이며, 대부분 한국의 유적지와 유물에 대한 짧은 단편들이다.
최순우는 김수근 건축사와 관련 일화가 있다. 김수근은 1963년경 우연한 계기로 만난 최순우의 높은 안목에 탄복하여, 저자가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 전까지 한국의 여러 유적지를 함께 답사하면서 김수근에게 ‘한국미’를 훈련시켰다는 것이다.
김수근은 생전에도 “조형일반에 관해서는 최순우의 안목을 능가하는 사람을 내가 알기로는 찾기 힘들다”라고 술회하였다고 한다. 조형에 대한 안목, 건축사들이 흔히들 ‘감각’이라고 지칭하며 평생 동안 탐하는 재능 아니던가.
건축사가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가진 투시력과 같은 ‘안목’이 한없이 부러울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찰과 유물을 한국정서에 기반한 정교한 분석에도 있지만, 오히려 이름 없는 유적지와 작은 소품에 대해 ‘한국의 미’를 발견하고 투시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삼척시에 있는 동해척주비 옆(!)에 있는 돌비석머리를 보면서, 저자는 이름 없는 석공의 마음속에 있는 추상정신과 추상의욕을 읽고 있다(154p). 한국의 모든 건축사가 위대한 건축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무명의 돌비석머리를 빗대어 모든 석공(건축사)들이 지니고 있었던 ‘나만의 의지와 의욕’을 깨우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의‘안목’이 향상되었는지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가까운 공공박물관을 방문해 보라. 전과 다르게 관람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합격(?)했다는 방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