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역 근처 자리 잡은 버건디색 다용도 건물
무채색 건축물들 속, 새로운 시작 의미
플랫 슬래브 구조로 천장고 확보, 외부 계단 통해 디자인 독창성 드러내
부평(富平)이란 농경지가 넓고, 수확량도 많은 넓은 평야를 뜻한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 중심이던 시기부터 교통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게 됐다. 교통의 중심이라는 건 지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따라서 여인숙(旅人宿)이나 여관(旅館) 등 숙박 시설도 하나둘 생겨나 촌(村)이라고 부를 만한 규모를 이루게 됐다. 그래서 부평역 근처에서는 산업화시대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양상이 바뀌면서 어느새 부평역 근처를 구(舊)도심이라고 부르는 이가 늘어났다.
2023 인천광역시 건축상 장려상 수상작 ‘STAY HIGH’(박지윤 건축사, ㈜나인아키텍터스건축사사무소)는 부평역 근처 이른바 모텔촌(村) 가운데 자리 잡은 다용도 건축물이다.
건축주는 자신과 가족이 거주할 단독주택과 고시원, 그리고 사무실까지 세 가지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원했다.
▲단독주택으로 사용할 한 층을 제외한 다른 두 가지 용도로 최대 면적 확보 ▲원룸 수준의 고시원 디자인 등이 과제였다. 일반상업지역이기는 하지만 최대용적률은 440%까지만 가능했고 가로구역별 최고 높이 제한지역으로 높이 한계까지 적용돼 최대용적률을 확보하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설계를 담당한 박지윤 건축사 등은 플랫 슬래브(Flat slab) 구조를 제안해, 8층 건물에 천장고(天障高)를 확보했다. 플랫 슬래브 구조로 설계하면 보가 없어 층고를 낮게 하더라도 천장고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대용적률을 확보하기 위해 매스를 단순하게 디자인했으며, 단일한 재료를 통해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디자인적인 독창성은 입면 패턴과 외부 계단을 통해 확보했다.
설계자들은 건축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외벽 마감 벽돌색에 대한 검토도 다양하게 진행했는데, 결국 버건디(burgundy)로 결정됐다. 무채색으로 채워진 주변 건축물과의 차별성을 확보해, 공간에 ‘시작’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음은 설계를 담당한 박지윤 건축사와 윤성진, 전주리 두 파트너가 함께 한 일문일답.
박지윤 건축사 등과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STAY HIGH(스테이하이)는 인천시 부평역 주변의 이제 막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구도심, 모텔촌에 위치합니다. 대지 주변의 맥락(Context)은 오랜 시간이 지나며 빛바랜 건물들, 그리고 무채색에 가까운 주변으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과 대비되는 색상으로 도장을 찍는 듯 새로운 시작점을 이제 막 변화를 시작하는 도시 안에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조건은 면적 225.8㎡의 작은 대지였습니다. 건축주는 부평 토박이로 건축주와 5인 가족이 거주할 단독주택과 고시원, 사무실이 결합된 용도의 건물을 원했으며, 이곳에서 부평동에서 제2의 시작을 기대하셨습니다. 혼합된 용도 건물로 공용공간과 건축주 가정의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는 분리 계획과 고도제한이 있는 대지 조건에서 건축주의 요구를 구현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였습니다.
Q. 그렇게 염두에 뒀던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주변과 비슷한 계열의 색(무채색)보다는 시작의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붉은 계열의 버건디 벽돌을 외벽 마감으로 선정했습니다. 단순한 매스의 형태로 디자인하였으며, 단일 재료를 통해 전제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입면의 패턴과 외부 동선을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해 독창성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그곳을 찾는 이들은 붉은 벽돌 건물을 기준으로 주변 지리를 설명한다고 합니다. 확실히 도시의 시작점이 된 것 같습니다. 좁은 대지에서 최대한 공간확보를 통해 고시원 이용자에게는 일반 원룸 수준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였고, 고시원 내의 모든 가구는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건축주의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7층에 단독주택을 설계했으며, 한 층의 작은 바닥면적의 한계로 한층 위인 8층에 건축주 가족의 넓은 테라스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건축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공간디자인, 브랜딩, 가구디자인 및 조명디자인, 조형물, 친환경설계 등 도시와 건축이 구축되는 모든 과정을 디렉팅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을 넓은 시각으로 접근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차별적인 디자인 캐릭터(Design Character)를 구축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분야 협업자와 협력해 독창적인 성과를 연구, 제시하는 멀티디자인회사를 지향합니다. 나아가 건축사의 역할을 확장하여 새로운 유형이 되고자 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건축’의 의미를 확장하고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에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건축 이외에 조형물, 산업시설, 상업디자인(Merchdise Design, MD), 브랜딩(Branding)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 건축사 본래의 사회적 역할이었으며, 분업화 혹은 전문화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설계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건물을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이 아닌 건축주의 상상을 포괄하며 새롭고 개선된 건축적 경험을 선물하는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건축사의 진심을 사용자에게 삶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힘도 있습니다. 단순히 건축을 구체화하는 것의 이상을 생각하고 제시하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건축설계를 의뢰받으면, 건축주와의 대화시간을 길게 가지는 편입니다. 건축의 영감이라는 것은 결국 건축주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건축주는 일생에 한두 번 정도의 건축을 할텐데, 그 경험이 건축주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건축주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단순히 건축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디자인, 조명디자인, 사이니지, 브랜딩 등 많은 업무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 건축물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늘 질문을 던집니다. 그때마다 고시원, 주택을 포함한 복합시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받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시원의 이미지에서 구도시의 한 중심에 새로움을 선물했다는 신선함은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