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대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 고운기 역/ 눌와
앞 책 ‘건축과 감각’에서 언급한대로 그림자가 우리의 ‘통합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면, ‘그림자’에 대한 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만한 것이 없다.
이 짧은 수필은 일본 문학계 뿐만 아니라, 일찍이 미국 컬럼비아 건축대학에서도 필독서로 선정될만큼 인지도가 높은 에세이이다. 한국에서도 30여년 전 ‘음예공간예찬(김지견 역, 발언)’으로 번역되어 건축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유난히 건축디자인 관련분야에서 이 수필을 선호하는 이유는, 저자의 사물에 대한 탐미주의적 성향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건축사와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향은 닮았지만 시대에 대한 고민이 다른 것 같다. 서양의 신진문물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도 ‘아시아’적 감수성으로 일본적인 것을 발견하고 고유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저자는 애쓴다. 기와지붕을 모티브로 한 동아시아 현대건축의 디자인 실패는 단순히 형태와 비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이치로의 고찰에 따르면, 거대한 지붕아래의 ‘짙은 어둠’이 무겁고 높고, 면적도 크게 보이게 하여 ‘그늘 안으로 전체의 구조를 집어넣어 버리기’ 때문이다(31p).
다시 읽어보면, 저자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그 태도가 더 돋보인다. 저자가 이 글을 발표한 시기인 1930년대 일본사회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제국주의가 극한으로 치다를 때이다. 그런 배경을 고려한다면, 저자의 태도는 시대정신과 조류를 역행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경제성’이라는 거대한 조류로 인해 건축사 특유의 ‘반골기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