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부터 시행된다고 하는 새로운 건축사 자격시험은 아직도 방향과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건축사들에게 자세히 설명되거나 토론된 적이 없다. 공청회나 건축학회의 연구만 진행된 상태이며, 국토교통부의 진행 방식과 건축사들과의 긴밀한 협의나 구체적인 방향 설정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7년 건축사 자격시험의 평가 방식을 객관화한다는 명분으로 컴퓨터 기반 평가(CBT) 방식을 추진하는 국토교통부의 방침이 우려스럽다.
그 이유는 그동안 도입되거나 추진된 많은 건축사 자격 관련 제도들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는 예비시험의 폐지와 5년제 건축대학 인증제가 있다.
산업화에 따라 필요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된 건축사 면허제도는 자격제도로 변경되었으며, 예비시험이 폐지되면서 조건부로 5년제 건축대학 인증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건축사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토론이 부족했으며, 사후 평가나 개선이 반영된 적이 없다. 그 결과, WTO의 요구를 핑계로 도입된 5년제 건축대학 인증제는 특정 과정에 편향된 교육으로 건축사가 필요로 하는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건축사 자격을 가진 교수진의 증원보다는 5년제 인증 대학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예비시험 폐지와 연계된 5년제 인증 건축대학 졸업생들의 현실적인 진로 선택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참고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는 학부에 건축과가 없으며,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건축사 자격의 효용성이 달라진다. 영국은 설계 면접 방식을 포함한 2단계 자격 심사가 엄격하게 진행된다.
수십 년 동안 학원을 통해 건축사 자격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수작업으로 도면을 그리고 청사진을 굽던 시대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도면을 완성해야 하는 시험 방식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또한 1990년대에 도입된 컴퓨터 기반 도면 작성 시스템(CAD) 이후 30년이 넘은 현재, 정보통신이 발달한 해외와 달리 온라인으로 도면을 등록하는 나라에서 여전히 수작업으로 도면을 작성해 시험을 보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CAD 도입 기간과 함께 있어왔다. 참고로, 우리보다 더 발전된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의사들도 시험에 첨단 장비나 보조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시험 방식, 즉 형식에 집중된 문제 제기와 대응인 것을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려는 컴퓨터 기반 평가(CBT) 방식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이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방식을 채택하는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많은 나라들이 형식적 공정성이나 객관성보다는 주관적인 방식으로 평가를 진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럴까?
건축사는 근본적으로 엔지니어가 아니라 창의력을 기반으로 건축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에 더 가깝다. 여기에서 건축사는 기본적으로 설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다. 건축 설계는 기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건설 과정을 통해 실현하고, 지어진 건축물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진단 능력을 갖춘 전문가다. 건축사는 구조, 전기, 통신, 소방, 기계 등 다양한 분야를 조율하면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종합 구성체를 창조하는 전문가다. 건축 설계는 건축사가 되기 위해 습득한 고유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이를 형상화하여 현장에서 소통하기 위한 필수적인 언어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건축사의 언어를 컴퓨터 기반 평가(CBT) 방식으로 평가하고 자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건축사 면허제도, 현재는 자격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자격이나 면허를 부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공무원들이 한동안 시험 면제를 받아 자격 취득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과거의 사례를 볼 때, 2027년에 새롭게 도입될 예정인 자격시험이 매우 우려된다.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한다.
자격시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건축사의 불법 자격 대여나 건설업의 불법 면허 대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제도를 서둘러 폐지하고 새로운 자격시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건축 분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지 우려된다. 현재도 상황이 혼란스러운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