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처마선으로 매스 형성 ‘하늘마루(天樓)’가 백미
현지 기후와 환경 고려한 2개의 중정…채광은 향상, 에너지는 절감
본사에서 설계 담당, 현지업체와 기술협력해 크로스 리뷰 역할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외교단지 내에 한국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대사관이 들어섰다. 단아한 처마선이 고즈넉한 풍경을 완성하고, 두 개의 중정은 서로 다른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천루(天樓)는 하늘과 맞닿아 있어 높아진 국격과 위상을 표현한다. 또한, 교민들에게는 이국적 풍경 속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대사관은 철근콘크리트 라멘구조의 지상 2층 건물이다. 1·2층 연면적은 2,211.52㎡에 달한다. 로이복층유리와 송판 무늬 노출콘크리트 등을 외부마감으로 사용했고, 사용된 자재의 상당 부분이 국내에서 조달돼 건축물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다양한 외부공간을 설계하면서, 각 영역별로 조닝이 이뤄져 색깔을 입혔다. 경비 효율성을 위해 각 기능별 동선은 분리했으며, 대지출입에 따른 위계도 형성했다.
(주)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브루나이 한국대사관은 지역에서 환경 친화적 대표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브루나이는 보루네오 섬 서북 연안에 위치하며,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연평균 강우량이 3,300밀리미터에 달한다.
경복궁 사정전의 지붕 모양을 차용해 일사열 차단과 실내 확산광 유입을 계획하는 등, 자연환경을 고려한 설계가 진행됐다. 이는 냉방 부하 저감, 단열 성능 강화, 외벽면 경사를 통해 일사 부하를 다시 한번 저감하는 등의 효과를 냈다. 또한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도 이뤄진다.
주목할 점은 모든 설계가 국내 본사에서 진행됐고, 현지 인허가는 본사 해외사업부가 담당했다는 점이다. 현지 업체는 주로 자료조사, 분석, 공공기관 대관 업무 등에 협력했으며, 국내에서 마련된 설계사항에 대해 현지 업체와의 크로스 리뷰를 통해 오차 없는 공사 물량과 공사비 명세서가 작성됐다.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이원재 설계 총괄대표는 “해외프로젝트는 해외 법인이나 현지 파트너를 통한 안정적인 정보 획득, RFP(제안 요청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구체화 등이 관건”이라며 “브루나이 대사관은 한국의 전통 건축미와 브루나이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에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특색 있는 한국건축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행림건축 이원재 설계 총괄대표와의 일문일답
Q. 해외 건축 설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무엇인가요?
모포시스와 겐슬러 등과 협업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들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으로 디자인 역량과 현지 정보 수집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비교 대상이 글로벌 수위를 다투는 건축사사무소이긴 하지만 클라이언트들의 기대치는 만국공통이라는 점에서 아직 발전해야 할 영역이 많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싶습니다. 국내 언론이나 건축사들이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전을 벌이지만 사실 저변에는 건축을 입시와 같은 프레임으로 인식하고 성과주의에 매몰된 환경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수상에 집중하기보다는 건축담론이나 연구 활동이 뒤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영광도 따라오지 않을까요? 이런 와중에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국내 건축사들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건축이 해외에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인데, 결국 건축시스템의 정상화 또는 선진화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해외건축 설계 과정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순간이 도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특별히 거창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실제 행림이 갖고 있는 경쟁력과 노하우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포트폴리오와 인적 네트워크입니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들이 설계를 의뢰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건축사사무소의 포트폴리오입니다.
과거 작품의 프로그램·동선·배치계획은 어땠는지, 현지화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는지와 같은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죠. 이와 함께 네트워크도 무척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생활이 길었던 만큼 글로벌 상위 20개 건축사사무소와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 SNS를 통해 소통이 가능하며, 상호 간 협업으로 수주활동에도 도움을 받는 수준에 있습니다.
로컬 프로젝트는 신뢰도의 문제가 큰데,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보니 개인적인 크레딧 등은 검증할 필요가 없어 진행이 빠르게 이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Q. 브루나이 한국대사관 프로젝트 종료 이후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사관 청사에는 방송설비가 구비된 다목적홀과 교민사랑방이 마련됐습니다. 가변적 확장공간인 다목적홀의 경우 대사관이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공간으로 활용돼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또한, 현지에서는 대사관 청사가 한국과 브루나이 간의 교류와 문화적 경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스탠더드에 맞추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국내 건축 업계에서는 기술 변화에 대한 저항이 다소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행림은 로봇, 3D프린팅, BIM 등 세계적인 수준의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고, 이것이 직원들의 근무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미국 멀티스튜디오와 캔자스시티에서 워크숍을 가졌는데 현재 대형사 99%가 BIM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그들은 BIM과 같은 기술을 자사의 경쟁력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국내 설계대가를 현실적으로 조정하여 최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 조달청은 연간 300조 원 규모를 아웃소싱하며, 미국 내에서는 아틀리에든 대형사든 10년간의 업계 경력을 평가하여 설계공모 기회를 제공합니다. 국내에서는 설계대가를 재정립하고 시장과 시스템 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건축사사무소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