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성당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1791년 12월 8일에 참수되어 순교한 곳으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 순교 터이다.
1889년 봄인 5월 성당이 설립되어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가 첫 본당신부로 부임하였고, 1891년 이곳의 집과 터를 매입하여 본격적인 전주지역 사목활동을 펼쳤다.
1908년 보두네 신부는 이곳에 성전건립을 시작하였는데, 성전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의 건축 경험이 있었던 프와넬 신부가 하였다.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재정난을 비롯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14년에 성전 건축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성전 내부의 전례에 필요한 시설과 성물 등의 설치가 다 이루어지지 못해 축성식은 갖지 못하고, 축복식만 진행하였다.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은 지체 높은 양반가의 자제들로,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하였으나,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된 후, 스스로 교회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하였다. 3년 뒤 윤지충은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권상연은 그로부터 천주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1791년 여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여, 권상연과 함께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교식 예를 쓰지 않고 신주를 불살라 버렸는데, 이 소식이 조정까지 전해진다. 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피신해 있던 그들을 대신해 숙부를 감금하자, 이들은 진산 관아에 자수하였고, 전락 감영에 압송되어 온갖 문초와 배교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천주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라는 말로 자신들의 믿음을 당당히 드러내었다.
시대와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놀라운 신앙 고백이자 선언이었고, 이에 그들에게는 군문효수형이 언도 되었다. 그렇게 순교로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 한 윤지충의 나이는 33세, 권상연의 나이는 41세였다.
공사를 시작한 지 7년 만인 1914년 외부공사를 마쳤는데, 이듬해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56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그 뒤를 이어받은 제2대 본당 주임인 라크루 신부의 주도로,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내부공사를 진행하여 마침내 1931년, 착공한 지 23년 만에 성당을 완성하였다.
전동성당의 건축양식
전동성당의 성전은 호남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서 그 종교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 및 예술적 차원에서도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먼저 성당 정면 아치를 보면, 벽돌로 장식한 부분이 보이는데, 이것을 아키볼트(장식 창도리)라 한다. 정면 중앙에는 높이 솟아 있는 고탑과 좌우 계단탑이 있는데, 고탑 밑에는 종탑이 있고, 종탑 밑에는 미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장미창이 있다.
그리고 보통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성당을 받치던 아치가 바닥까지 내려오거나 기둥머리까지 내려오는데, 전동성당의 아치는 채광창이 있는 벽에서 멈추고 색깔을 바꾸어 붉은 벽돌로 기둥머리까지 오도록 하여, 전반적인 따뜻함과 포근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내부를 보면, 붉은 벽돌 띠가 제대의 뒷벽을 포함해 모든 곳을 감싸고 있는데, 이 역시 내부 공간 전체에 따뜻함을 주면서 동시에 내부의 수직성과 수평성을 균형 있게 잡아주고 있다. 참으로 탁월한 조형이며 미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축물로, 국내에서의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이며, 전동성당 사제관은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다. 정식 명칭은 ‘천주교 전동교회’이다.
출처 : 나무위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