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나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사업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사회학자인 아서 브룩스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라는 책에서 전혀 다른 사람을 언급한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하면서 현재 20억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첫 번째 기독교 개종자로 교리를 체계화하고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통해 기독교의 실질적인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스마트폰이 2000년 이후까지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본다면 사도 바울의 성공이 훨씬 더 주목할 만하다는 게 브룩스 교수의 주장이다.
과연 사도 바울은 어떤 방식으로 포교를 했을까. 바울의 포교 방식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브룩스 교수는 설명한다. 바울은 “내 몸에 가시가 있고, 주님께 물리쳐달라고 간청했지만, 주님은 이미 충분한 은총을 내렸으며 나의 힘은 연약함 속에서 완벽해진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뜻에 따라 연약함과 모욕 고생 박해 어려움을 즐긴다”며 신자들을 모았다고 한다.
바울이 자신의 몸에 가시가 있다고 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는데 현대 의학자들은 뇌전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울이 경험했다고 말한 여러 증세가 뇌전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쩌면 자신의 치명적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질병을 포교의 핵심 무기로 삼았다. 그의 포교 메시지를 현대의 광고 캐치프레이즈로 치환하면 “저는 병으로 인한 고통이 더 심해지고 있어요. 저의 종교로 와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셈이다. 어떤 마케터도 이런 전략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취약점이나 고통을 사람들과 공유했다. 그는 삶을 마무리할 시기에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 고통받거나 배신당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하면서도 하느님이 천국으로 자신을 인도할 것이라는 희망을 함께 적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의 슬픔과 고통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몸에 박힌 가시가 공감대를 울렸다.
우리의 약점이나 고통은 늘 숨기고 싶은 대상이다. 하지만 감추면서 태연한 척하는 것은 고통만 키울 뿐이다. 상황을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으면 신세계가 열린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갈 때 피아노 연주를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귀가 잘 들리지 않자 피아노를 너무 세게 쳐서 망가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청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베토벤은 단점을 감추거나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전혀 새로운 작곡 방법을 찾아내 교향곡 9번과 같은 대작을 만들었다. 청각 장애는 당대의 음악 스타일이나 다른 작곡가의 영향을 차단하고 내면에 집중하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던 측면도 함께 갖고 있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