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축 상에서 미래는 어제와 오늘의 연속이다. 철학자 덜타이는 ‘어제의 내일이 오늘’이라 한다. 어제 건축가의 모습이 우리 건축가의 현재 모습이며, 우리 건축가 집단의 오늘 일상이 바로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내일 모습이 된다.

건축가가 건물을 짓는 공돌이에서 생활공간을 창작하는 멋있는 문화적 건축가로 우리사회에 인식된 지는 불과 40여년으로 선진국에 비하면 무척 짧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인들은 건축가를 ‘설계사’라 부른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사’를 중시하는 우리사회의 풍조 때문일 것이다. 건축계에서도 건축가라는 용어사용을 자제하고 ‘건축사’의 면허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건축가로 불리든, 건축사로 불리든 중요하지 않다. 건축가들의 사회적 위상과 인식이 중요하다.(이 글에서는 습관적으로 불러온 건축가로 명칭하기로 한다.)

여성으로 건축전공을 시작한지 30년이 넘었지만 건축계의 중심보다는 주변에, 그리고 여성특별그룹으로 소외되어 생활하다보니 남성들만의 게임의 법칙은 알 수 없으나 건축교육자의 눈으로 건축가들의 오늘을 생각해 본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가의 위상이 불안하다. 건축가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와 존경이 무너지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70년대 이후 경제도약기 동안 건축가는 문화인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상을 만들지 못한데 있다.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건축가들은 그 동안 전문가답게 소신 있는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건축을 경제 가치 우선으로 인식시키는데 일조했다. 우리 국토환경이 매력 없이 난개발 되고, 건물들은 외국에 비해 그다지 멋있지 않고, 간판으로 뒤덮이고, 모든 국민들의 주거가 아파트화 되도록 한데는 건축인들의 책임이 크다. 이제 문화가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으로 강조되는 시대에 들어오면서 삭막해져가는 도시경관을 보며 일반인들은 우리나라 건축가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문화적이지 못했던 우리 대다수 건축가들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건축가의 역할도 축소되어 가고 있다. 도시설계는 엔지니어링 사무소에, 아름다운 도시 경관 만드는 작업은 조경, 산업디자인, 실내건축 전공 전문가들에게 그 영역을 내주고 말았다.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건축설계를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미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전문가로의 건강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오늘 건축가의 일상이 쌓여 미래 건축가들의 사회적 위상이 만들어 진다. 잘나가는 건축가는 오늘 무엇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88올림픽 이전부터 사무실 운영하여 건축경기 좋은 시절에 탄탄하게 자리 잡은 건축가의 오늘 하루는 접대골프하고, 휴대폰으로 사업하고, 설계는 그런대로 디자인 잘 하는 건축가 고용하고, 경쟁이 치열한 프로젝트 경우는 해외건축가들에게 설계안을 받는데 급급하게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그러다 밤에는 어디서 어떻게 사업하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막 사무실을 개설한 건축가들은 선배건축가들의 생존방법을 부정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건축가들의 수주방법을 닮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미래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건축가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 나이 들어 남들이 퇴임할 때 청년처럼 일할 수 있는 멋있는 직업이라며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설계에 자질 있는 학생들이 설계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 사회의 자리 잡힌 건축가들의 일상을 보며 실망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설계를 꽃피우는 선진 국가들의 70세, 80세, 90세 된 건축가들처럼 노장을 과시하며 작품으로 존경받는 건축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건축설계를 전공하려는 자질 있는 젊은이들이 밝은 미래를 계획하며 오늘을 지낼 것이다.

역사에 남을 중요한 상징성이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보면 더욱 실망한다. 건축가들끼리 서로 폄훼하여 온 결과이다. 서울 시청의 진행과정을 보라. 신축안 공모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이 여러 번 절차가 번복되었다. 관련된 건축가들의 권위가 실추 되었다. 그러나 건축계를 대표하는 어느 단체도, 원로 건축가들도 공론화하지 않았다. 건축계는 문화인으로 사회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정계, 재계, 의료계, 문화예술계 등 어느 분야도 전문가 집단의 전문성을 침범 당할 때는 원로들이 나서서 의견을 제시한다. 건축계는 침묵한다. 자리 잡은 원로 건축가들은 후배를 위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한다.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축계의 어른이 부재했다. 오늘 이렇게 흘러가는 물이 내일의 더 큰 바다로 모일까 두렵다.

다행히도 현재 우리 건축계는 이제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사’협회와 ‘가’협회의 통합이다. 분명한 점은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통합한다는 점이다. 통합단체는 이제 건축계의 신기원을 세워야한다. 하나의 목소리로 문화인그룹에서 실추된 건축가의 위상을 우선 높여야 한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나비같이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세계 헤비급 복서의 승부전략을 재조명하는 KT와 KTF의 통합 후 홍보문구도 참고해 볼 만한다. 치열한 국제경쟁 무대에서 우리 건축가들이 국내외에서 인정받으려면 건축가들의 오늘 일상이 변해야한다. 통합단체의 리더들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면 건축계의 미래는 어둡다.

시급하게 개선하여야 할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건축사등록원이 빠르게 가동되어 건축사들의 평가와 관리시스템의 도약이다. 둘째, 통합단체는 건축사들의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스스로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건축사 집단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스포츠선수들처럼 평가받으면 문제가 없다. 밤낮으로 기량을 닦고, 실력을 단련하여 출전한다. 멋있고 공정한 게임을 보여야 발주처도 사용자도 건축가들에게 열광하고, 존경하고, 위상 높게 대할 것이다. 셋째, 건축가의 업적이 존중받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 설계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 공간을 만든 건축가가 존경받는 사회를 물려주는 일이 건축하는 후세를 위해 가장 값진 일이다. 프랑스에는 건축가 르 꼬르뷔제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고, 스위스에는 르 꼬르뷔제 초상이 그려진 지폐가 있다. 그리고 취리히에는 스위스 여성 건축가 룩스 구이어가 설계한 건물 근처에 건축가를 기념하는 ‘룩스 구이어 길’이 있다. 우리도 이렇게 건축가의 업적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기 위해 통합단체는 힘을 모아야 한다. 넷째, 건축가의 역할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관심을 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의사의 이익보다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명의가 되듯이 사용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할 때 건축가들의 위상이 따라서 높아진다. 건축가들의 기본 목표가 품격있는 국토환경과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터전을 만드는데 있어야 건축계가 존경받는다. 바로 오늘의 모습이 우리 건축가의 내일이라는 점을 새기면서 자존심을 세우며 오늘 시간을 보내야 우리 모두의 내일이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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