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잘 아는 지인과 ‘싫증’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그분은 학교 졸업 후 바로 좋은 기회를 얻어 일찍 사업을 시작했고, 전문가로서 본인이 이룰만한 것은 모두 이뤘다고 했다. 그런데 4년 전인가 모든 게 싫증이 나는 등 무기력해지는 ‘burn out’이 왔다고 한다.
번아웃은 사전적 의미로 ‘타 버리다’ 이지만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의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 발표에서 직업 관련 현상으로 포함하면서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분류됐다.
지인은 직업상 본인도 모르게 그 증상이 오는 바람에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고 하고, 당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번아웃과 비슷한 감정인 싫증이 나서 헤어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그분이 자신도 모르게 왔었다는 번아웃 증후군이 나의 직업에 대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필자가 건축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한 건 24살 즈음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칫 겸손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겸손으로 설명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내가 과연 이 분야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번아웃을 경험한 지인은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일적인 부분에서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했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인가 번아웃을 일으킬 정도의 싫증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우울증이 올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번아웃을 겪고, 잘 지내던 이들에게서 마저 싫증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라고 말이다. 그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모든 일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 그는 그렇게 내가 묻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 이유라는 것을 우리가 늘상 섭취하고 있는 음식물과 비교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필자는 맛있는 것을 찾아서 먹는 미식가라기 보다는 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여기서 ‘싫증’이라는 것이 꼭 맛있는 것을 찾아서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다가도 ‘오늘은 별로 먹고 싶지 않네.’ 이런 느낌이랄까. 싫증이라는 것이 아무 이유 없는 번아웃을 일으킬 정도의 그것이라면 싫증의 본 모습은 그냥 ‘별로’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 별로라는 것은 진짜 별로다. 왠지 가벼워 보이고 그 일에 대한 진심이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느낌 정도. 그래서 ‘별로’라는 감정이 생길 일이라면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 본인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은 싫증의 원인이 바로 사람 자신에게 있고 사람 내지 무언가를 자신의 잣대에서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기주의적인 감정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점들을 보면 싫증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닐까한다.
정리하면 필자는 다행히 아직 일에 대해서 싫증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며 전문가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고 앞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