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너무 어렵다. 건축이 어려운 것인지 건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두뇌 구조가 복잡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읽다가 그만 멈칫 멈칫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하니 큰 문제다. 가끔 그게 모두 일종의 전략에서 나오는 행동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던 적이 있다. 문장속에 조각 영어를 잔뜩 넣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알 수 없는 현학적인 단어를 곁들이고, 듣도 보도 못한 (요즘의 표현으로는 듣보잡) 철학자나, 국적불명의 '유명건축가'들을 뿌려서 마구 버무린 잡탕밥으로 대중과 유리됨으로써 스스로를 현학적으로 치장하는...

건축 또한 너무 어렵다. 물색없이 너무 어질러놓거나, 너무 유치하거나 해서 도대체 장단을 맞출래야 맞출 재간이 없다. 장난으로 시작해서 장난으로 끝나는 놀음을 너무 진지한 낯으로 해대니 정말 난처하다. 더군다나 건축은 장난감으로는 너무 크고 비싼 장난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장난이 몇 번의 재주 넘기를 하면 이상하게도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처럼 상업적인 브랜드로 치장되고 자본주의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는데 있다.

“그러면서 건축으로부터 창조성이 사라져간다. 특히 건축물이 지어지는 장소, 그 자리의 미묘하고 다양한 조건을 존중하면서, 하나씩 독특한 해답을 찾아가는 건축가의 끈질긴 창조성은 점점 소멸한다. 본래 건축가는 브랜드의 반복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하나하나 찾은 해답을 축적해 나가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건축과 상품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일본 건축계의 떠오르는 스타 쿠마겐코는 대단히 묘한 지점에 서서 태연하게 현대건축의 양심을 쿡쿡 찔러댄다. 건축은 브랜드를 얻은 대신 창조성을 잃었다고, 그러면서 차근 차근 꺼내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건축 영웅들의 눈물 나도록 '빈한한 속살'과 그 빈한함을 덮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근대건축의'어처구니 없는 가면' 이다. 더군다나 이 책의 미덕은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더군다나 쉽게 이 시대, 건축의 진정성을 빼앗긴 이 시대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현대건축은 강한 건축, 이기는 건축으로 표상되는 폐쇄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사회성을 담보하는 약한 건축, 지는 건축, 부드러운 건축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조용한 설득이 시끄러운 웅변보다 훨씬 사람들에게 파고드는 법이다. 우리 건축계에도 저렇게 100년이라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건축가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저자: 쿠마겐코
역자: 임태희 옮김
출판: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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