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서울시는 도심 근대화의 대표적인 산물인 세운상가군의 데크와 주변의 공공공간을 재정비하여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다양한 활동을 담고 있는 주변지역과 연계하여 서울 역사도심의 중심인 북악산~종묘~세운상가군~남산을 잇는 남북보행중심축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를 진행 중이다. 도심산업 및 남북보행축의 중심공간으로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조성, 세운지구 전체의 활성화를 꿈꾸며 야심차게 임하고 있지만 의욕이 넘쳐서일까, 시작부터 엇박자다.
설계범위와 대상을 종로의 종묘공원 변 공간에서부터 퇴계로 변 남산 하부 공간까지를 연결하는 세운상가군의 데크와 이의 상․하부 주변 공공영역으로 설정하고 세운상가군 서측 4미터 폭의 도로, 동측 7~10미터 폭의 조성예정인 녹도를 포함한 이번 공모는 참가자에게 대상지 전체의 마스터플랜, 1단계 사업구간의 구체적 설계안, 세운상가군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아이디어 공모와 계획설계 공모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서울시의 꼼수가 시작된다. 계획설계는 설계업무의 일부로 건축사법에서 보장된 건축사의 업무임에도 아이디어 공모에 대한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외국건축사면허 소유자에게 참가자격을 개방해버렸다. 이는 건축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내 건축사와의 협업 의무화 조항을 무력화시켜 버린 내용이다. 또한 '실시설계도면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의 대표'라는 해괴한 문구로 공동응모대표자의 자격을 규정했다. 전문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업체가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의도로, 주관 분야 없는 공모를 진행하는 것이다. 지상3층에 1킬로미터의 보행자전용로를 두고 이를 따라 상가를 배치해 몰(mall)을 만들고자 했던 김수근 선생의 '세운상가 아파트'계획을 염두에 둔다면 공모지침서에서 '데크'라고 표현된 보행자전용로는 상가와 일체화된 구조로 상가의 일부다. 즉 건축물의 일부다. 이를 두고 서울시는 애써 '도로점용허가 된 구조물'로 적시하고, 건축분야 설계 단계(계획, 중간, 실시)가 아닌 엔지니어링 분야 설계 단계(기본, 실시)를 적용했다. 이번 공모를 건축설계경기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구성원 5인 중 건축분야에 3인을 할애한 서울시의 의도는 무엇인가? 정말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