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건축사 단독응모 가능…초반부터 ‘삐거덕’

지난 2월 공고를 통해 시행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가 공모기간 중 삐거덕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공모전 자격기준을 애매하게 적용하는 등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4일 세운상가군의 데크와 주변의 공공공간을 재정비해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주변지역과 연계해 북악산-종묘-세운상가군-남산을 잇는 남북보행중심축을 복원하기 위해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를 공고했다. 공모 범위는 종로 종묘공원 변 공간에서부터 퇴계로 변 남산 하부 공간까지를 연결하는 세운상가군의 데크와 이의 상․하부 주변 공공영역으로 설정하고 세운상가군 서측 4미터 폭의 도로, 동측 7~10미터 폭의 조성예정인 녹도를 포함하고 있다.
서울시 행정자치부 유권해석 통해
외국건축사 단독응모 가능하게 해
먼저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공모전 참가자격이다. 이번 공모전 설계지침서 ‘설계경기 참가자 자격’을 보면, 조건 중 “참가등록시 등록자 중 최소 1인은 반드시 국내 혹은 외국의 건축사여야 한다. 이 경우 건축사는 등록시점 기준으로 해당국 관련법에 의거해 건축사 자격조건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문서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외국건축사가 단독으로 공모에 응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지가 4월 1일자 1면 ‘정부로부터 외면받는 국내건축사’를 통해서도 보도했듯이 서울시는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을 통해 외국건축사의 단독응모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행정자치부에 ‘외국건축사의 설계공모 응모’와 관련해서 질의를 했다. 질의 주요 요지는 ‘건축사법’에 따라 외국건축사는 국내건축사와 공동으로 설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건설기술진흥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따른 건축설계 공모 시 외국건축사가 공모에 참여하는 경우 ▲공모는 외국건축사 단독으로 참여하고 공모 당선된 후 국내건축사와 공동으로 참여해 계약체결이 가능한 지 ▲공모단계부터 국내건축사와 공동으로 참여 가능한지였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설계공모는 다자인이나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과정으로 실제 설계행위가 아니며, 외국건축사 단독으로 공모에 대한 응모가 가능하고, 외국건축사가 당선된 후에는 국내건축사와 설계업무를 공동으로 할 수 있다”고 회신했다. 행자부는 설계공모가 실제 설계행위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아 건축계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행자부의 답변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국제적 업무 협의 시, 우리나라에 유리한 정책적 협상의 도구인 건축사법 제23조제3항을 무시하고 우리나라의 건축서비스산업 관련 협상의 여지를 없애는 근거가 되어 건축계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행자부에 서신을 보내 항의하기도 했다.
실시설계 도면을 납품할 수 있는
업종불명 업체를 참가자격에 포함
또한 이번 공모전 참가자격 중 ‘실시설계도면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의 대표’라는 점도 논란의 소지가 된다. ‘실시설계도면을 납품할 수 있는 업체’의 기준이 애매해 전문성 없는 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통 건축설계공모 같은 경우 “건축사법 제7조에 규정에 의한 건축사 면허를 소지하고, 동법 제23조 규정에 의한 건축사사무소 개설 등록을 필한 자”를 자격기준으로 먼저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은 발주기관인 서울시가 건축설계공모전도 아니고, 조경공모전도 아닌, 애매모호한 성격의 공모전으로 만들어 전문성이 없는 업체를 참가자격으로 넣었다고 하겠다.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실무자는 “실시설계도면은 무허가 무자격업체에서도 그릴 수 있다. 발주처인 서울시는 이러한 업체들이 제출할 수도 있는 도면을 국제현상설계에 적요하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고 전했다.
‘데크’는 건축물인가? 구조물인가?
서울시의 이번 세운상가 국제공모전 마스터플랜의 주요 설계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변지역 및 건축물과 연계된 입체적인 보행네트워크 구축 ▲세운상가 전면 시민공간(현 세운초록띠공원) 조성 및 세운상가군 데크 연결시설 ▲세운상가군의 데크와 상하부 공간계획 ▲세운상가군 건물사이의 공중보행데크 ▲퇴계로 남측구간과 세운상가군 데크와 연결시설 ▲조경계획. 내용 중에 ‘데크’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됐는데, 세운상가 건축물 3층에 양옆으로 튀어 나온 부분으로 데크 하부는 도로와 주차장으로, 상부는 보행자전용로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삼풍상가와 풍전호텔 구간의 데크는 철거된 상태이며, 세운상가 가동, 청계상가, 대림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의 데크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데크는 건축물일까? 구조물일까? 일선의 한 건축사는 “공모지침서에 '데크'라고 표현된 보행자전용로는 상가와 일체화된 구조로 상가의 일부다. 즉 건축물의 일부이기에 건축물이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데크를 ‘도시계획도로 위에 조성된 공공시설물’로 설계지침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데크를 건축물로 여기지 않는 서울시가 이번 공모전을 ‘건축설계공모전’으로 시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