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시대
- 윤의섭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가 서 있고
풀꽃이 흐드러지게 깔린 이 마을은
어쩌면 저 길 건너편에 있었다는 대장간
쇳가루 때문에 검붉어진 흙에서
철분을 빨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바람을 따라 철사처럼 고분고분 휘어지는
버드나무 가지나
햇빛을 튕겨내는 철판 같은 풀잎들이
점점 은빛을 발산하며
너무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자라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은전만한 마을은
지나간 마을을 담고 있는 유적이다
가끔 들를 때 느끼지만
이건 어느 몰락한 대장간에서
땅 밑으로 녹아내린 쇳물이
철의 뿌리를 뻗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그들은 슬퍼하지 않는 힘을 돋아내고 있다
이 유적에 자주 오며 나는 믿는다
철의 경전을 메워가며
슬픔을 튕겨내는 이 빛나는 시대를 보라
- 윤의섭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1996
이 시인은 드물게 산업시대의 풍경들을 노래한다. 철근, 나사, 알 수 없는 쇠붙이들까지, 산업시대의 부속품들은 우리가 너무나 자주 보아왔던 것이고, 그래서 시로 노래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서정의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서정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런 시인에게 대장간이 있었던 터는 산업시대의 원형과도 같다. 시인은 그 터의 영역에서 자라는 식물들까지 철의 뿌리에서 자라고 있는 힘이라고 여긴다. ‘슬픔을 튕겨내는 이 빛나는 시대’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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