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의 입구
- 연왕모
그림자들이 늪지를 다녀갔다
무언가를 버리고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버린 것이
내 곁에 있다
가슴이 이상해요
구멍 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질 않아요
아무리 깊게 숨을 쉬어도 채워지질 않아요
내 가슴을 좀 채워주세요
흙이라도 한 삽 퍼 넣어주세요
그림자들이 돌아간 거리에선
마른 가로수들이 뽑혀나갔다
가로수로 오인된 사람들도 뽑혀버렸다
그들은 트럭에 실려 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어져갔다
스스로 멎어 있음은
혼돈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무들이 흔들렸다
- 연왕모 시집 ‘비탈의 사과’ 중에서/ 문학과지성/ 2014
연왕모의 시에는 늘 세계의 종말에 대한 묵시록이 깔려 있다. 그가 사랑을 노래할 때도, 희망을 노래할 때도 그것들은 어김없이 그의 바탕색이 된다. 그가 연주하는 베이스의 색이 늘 이렇다. 그는 일찍부터 그래서 인간들과 좀비를 대비시켰다. 그에게 영혼이 없는 인간은 인간일 수 없었지만, 또 한 켠에서 그는 이상하게 그런 것들에 끌렸다. 자신이 비어있다는 것을 아는 좀비들. 그 빈 데에 무엇이든, 흙 한 삽이라도 채워 넣기를 바라는 좀비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아닌가?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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