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대표 양반 촌락
국가민속문화재 제301호로 지정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출생한 반촌마을
영덕의 북쪽인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1㎞를 가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탄생지이자, 영양 남씨 집성촌인 조선시대 전통가옥들로 가득한 괴시전통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함창김씨(목은선생의 외가)가 처음 터를 잡은 이후 조선 인조때(1630년 무렵) 영양남씨가 정착하면서 남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경북 북부 해안지방에서 현재까지 단일 문중의 역사와 문화가 전승‧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반촌마을이다.
마을은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고 마을 북쪽에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부르다가, 목은 선생(1328~1396년)이 문장으로서 원(元)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고국으로 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과 자신이 태어난 호지촌이 시야가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비슷해, 귀국 후 괴시(槐市)라고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 말에 함창김씨(咸昌金氏, 목은 선생의 외가이며, 선생의 외조모는 영양 남씨)가 처음 입주(入住)한 이래, 조선 명종(明宗,1545-1567)년간에는 수안 김씨(遂安金氏), 영해 신씨(寧海申氏), 신안 주씨(新安 朱氏) 등이 거주하다가, 인조(仁祖) 8년(1630년)부터 영양 남씨(英陽南氏)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타성(他姓)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영양 남씨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문벌(門閥)을 형성하였다.
영양남씨(英陽南氏)와 괴시(槐市) 전통마을
마을은 ‘入(입)’자형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을 배후로 해서 마을 전면으로 넓게 펼쳐진 동해안의 3대 평야인 영해평야를 바라보고 있으며, 송천(松川)이 평야를 동서로 관통하는 등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 지형에 맞추어 대부분의 고택들이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와 토담 골목길을 중심으로 2~3백여 년 된 구조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어, 영남 반촌에서도 보기 드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내에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4호, 문화재자료 12호를 비롯, 약 30여 호의 전통가옥과 전통적인 마을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내 가옥 대부분은 안동지역 상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뜰집에 사랑채가 돌출된 날개집 형태를 취하고 있고, 지형의 영향으로 가옥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서향인 점이 특징이다. 또한, 영덕지방 ‘ㅁ’자형 가옥에서 많이 나타나는 통래퇴칸(通來退間)을 괴시마을 내 ‘ㅁ’자형 가옥에서도 그 존재와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특히, 뜰집의 경우 전국의 약 70%가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분포해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괴시마을의 뜰집은 영양남씨에 의해 17세기에 유입되어 학맥과 통혼, 분가에 의해 마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뜰집의 형식성을 탈피하여 실용성에 초점을 둔 양통집으로 변화한 가옥들도 마을에 공존하고 있다.
괴시마을의 뜰집은 안동을 거쳐 태백산맥을 넘어 조선 후기 영덕에 이르기까지 건축문화의 전파와 인적 교류 등 인문적 요인에 의한 건축의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괴시마을은 조선후기 영남지역 사대부들의 주택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문화와 예절이 훌륭하게 전승되고 있다. 또한 영양남씨 괴시파종택(경북 민속자료 제75호)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재와 전통고가 30여호 남아 있어 조상들의 생활과 멋을 엿볼 수 있는 전통마을이다. 특히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은 조선 후기 주택의 고격(高格)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괴시마을 공간구성의 핵심적인 가옥이다. 영덕군에서 괴시마을의 전통 유교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복원사업을 전개한 이후, 옛 모습을 되찾아 우리나라의 특색있는 전통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괴시마을에는 주거를 위한 가옥들 이외에도 양반 가문으로서의 역사와 문화를 드러내는 정자와 재실이 함께 있는데, 하나의 마을에 이렇게 많은 건축 문화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중심에서 산을 조금 오르면 목은 이색의 생애와 업적, 관련 유물 등이 전시된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목은 이색(李穡) (1328~1396년)은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의 절조를 지킨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이고,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대제학 등을 역임했었으며 문장으로는 이제현과 쌍벽을 이루었을 정도로 이름을 떨친 대학자이자 문장가로 조선 성리학의 주류인 권근, 길재, 이숭인, 정도전, 김종직, 변계량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엔 ‘영덕 괴시마을’이 경북 및 동해안 지역의 전통마을이자 반촌으로서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가진 마을로 문화와 전통이 잘 전승·보존되고 있는 민속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민속문화재 제301호로 지정 고시됐다.
국가 민속문화재는 전통적 생활양식과 민속문화 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돼 국가 법률에 의해 지정하는 문화재로, 이번에 지정 고시된 ‘영덕 괴시마을’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마을로는 전국에서 8번째이다. 이로써 영덕군은 기존 7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2건, 천연기념물 1건, 국가민속문화재 4건)에 더하여 8번째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
[출처 : 영덕문화관광]
괴시마을 주소 : 경북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