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 신철규
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앉으면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 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 신철규 시집 ‘데칼코마니’/ 문학동네/ 2017
착하다. 이 시에는 흔한 위악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보통 시는 그렇고 그럴듯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그렇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고 그런 문장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렇고 그런 문장들을 뒤집는 행위나 조합들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감은 눈은 그렇고 그런 감상을 약간 비켜서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고 나서야 꽃은 피어나고 잎사귀는 살랑거리고 빛이 보인다. 비로소 시는 그렇고 그런 흔한데서 벗어나 우리 마음속에 찍히고 뚜렷해진다.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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