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물 설계공모 의무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공모 공고가 늘어나고 있다. 건축사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있으며 신진건축사인 본인 또한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설계공모에 참여하게 되면 처음 마주하는 것이 공모지침서다. 신기하게도 지역과 기관을 막론하고 동일한 형식과 문구로 작성되어 있다. 프로젝트마다 그 공간이 담아야 하는 기능과 사업의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가 제출해야 하는 형식은 같다. 10여 페이지 설명서에서 앞뒤에 붙는 절반은 같은 양식으로 작성되어지고 실질적으로 중간에 들어가는 예닐곱 장 속에 건축사의 생각을 펼쳐내는 것이 공모제출물이 생산되는 과정이다. 짧은 기간에 작성되어야 하기에 최적의 효율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형식처럼 채워지는 절반의 동일한 양식 중 하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예정공사비’, 각 프로젝트는 사업비용이 있고 건축사는 당연히 그에 맞는 공간을 제안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행 공모과정에서 설명서 중 반 페이지를 차지하는 예정공사비 작성은 건축사의 의무보다 책임 전가의 도구로 작동된다. 현실을 더 풀어내 보면 참가자 그 누구도 공사비를 초과한다고 적지 않을뿐더러 모든 제출안이 제시된 금액에 맞춰 같은 금액이 적혀있다. 어차피 총액은 정해져 있고 공정별 금액은 눈치껏 적어낸다는 것이다.
공모당선을 확정 짓는 자리에서 공사비에 대한 타당성을 확인할 방법 또한 없다. 간혹 노련한 심사위원이 있다면 경험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나 누구도 명확히 지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할지라도 건축사는 사업비에 적정한 건축물을 제안해야 하기에, 져지지도 않는 책임을 물으며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이 상황을 인정하고 적절한 계획안이 제출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었다. 첫째, 완료된 공공건축물의 집행비용은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조달청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최신화된 자료가 아니며 정보의 양도 충분치 않다. 전국을 아우르는 기관에서 자료를 관리하여 규모를 막론하고 새로운 공공건축이 기획될 때에 이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여 사업예산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공사량과 사업비의 부조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숨어있는 면적을 드러내야 한다. 건축법에서 바닥면적 산정에 제외한 부분일지라도 공사비용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공모과정에서 명확히 확인되어야 한다. 동일하게 사용되는 설계개요의 양식에서 한 단락만 추가해도 되는 부분이며, 이는 심사과정에 참고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셋째, 요구 면적의 변경 하한 폭 제한을 없애야 한다. 보통 면적당 공사비를 통해 총 공사비를 산정하고 있으며 이렇게 연계된 산정방식이 건축사의 창의적인 계획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면적을 줄여서라도 다른 가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을 때에 그런 선택을 한다면 공모지침을 어긴 불량제안이 되어버리고 면적을 맞추며 필요한 내용까지 제안할 때는 실질 공사비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창의적 고민을 축소하고 면적이 우선되는 건축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건축사에게 이 정도의 자율은 부여할 필요가 있다. 결과가 어설프다면 탈락될 것이고 타당하다면 특별한 공간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넷째, 이용자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셋째 사항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공모지침을 통해 전달되는 사무적이고 건조한 표현과 숫자만으로는 오해를 낳는 경우가 많다. 현장설명회에서 이용자를 통해 요구사항이 생긴 배경을 들을 수 있다면 각 공간의 실질적 기준을 지키며 유연한 사고를 펼칠 수 있으며 최적의 공간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사업처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공공건축의 질적 성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공공건축 생산과정에서 다양한 제안을 비교하고 최적의 공간을 선정하는 설계공모는 적합한 대안이 되어 줄 것이다. 공모의 순기능이 발현되어 앞으로 태어날 공공건축은 관계자 모두가 “이래서 그러했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하고 공감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