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석 건축사
정창석 건축사

건축설계를 하면서 건축사로서 30여 년을 ‘보통의 건축사’로서 살아온 것 같다. 현재는 안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조금은 고집스럽게 도면을 그리고, 건축주를 만나 상담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얼마나 더 설계를 할 수 있을까 계수하면서, 이면에서는 이제는 설계를 내려놔야지 하는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한다. 지금 직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수많은 야근을 하며 보낸 세월의 흔적이 하나둘 건강 이상신호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가족들의 반응도 예전과 다르게 민감해지고, 그렇게 작업하면서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하다며 작업을 줄이라고 압박을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나만의 동굴이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작업공간에서 변함없는 시간 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무언가 남겨놓은 게 없다는 생각에 몸은 따라오지 못하고 마음만 분주하다. 실제로 설계를 내려놓으면 어찌될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고작 몇 년의 설계 실무경험으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고 좌충우돌하며 보냈던 시절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진 설계공모에 매진해가며 건축이 삶의 전부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설계를 하고 싶은 욕심에 땅을 배우고자 몇몇 건축사와 함께 공부하러 다니기도 했다. 이때 습득한 기초적인 음양의 관계와 지리오결, 양택 등의 동양철학에 관한 지식이 설계에 은연중에 적용이 되곤 한다. 지적 허영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들뢰즈에 빠져 이해하려고 몇 번씩 반복해 읽으며 몇 년을 보내기도 하였다.

나에게는 이러한 과정들이 모여서 나의 건축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이가 G(성장률)값을 올리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건축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문직은 여기까지는 고민하며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업역을 넓히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G(성장률)값을 계속해서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건축사 회원의 동의가 있어야 되겠지만 조심스럽게 대한건축사협회에 건의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R(수익률)에 관한 부분이다.  

건축설계를 의뢰하러 온 다양한 부류의 건축주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점은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설계하라고 하는 사람조차도 설계를 어느 정도 완성할 때가 되면 공사비를 줄이는 방법을 물어오곤 한다. 나중에는 설계비까지 깎아 달라고 한다. 하물며 처음부터 노골적인 건축주는 어떻겠는가? 이쯤 되면 잠시 숨을 돌려야 한다. 까딱하면 건축주의 감정이입에 말려들어 직원 한사람의 인건비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낭패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항상 속으로 되뇌이는 말이 “당신이 나보다 나아”이다. 우울해 하지 말자. 착한사람이 되기보다는 작은 돈이지만 빼앗기지 말고, 점점 커가는 스노우볼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 일정한 수익률을 창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찍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신 건축사님들도 있겠지만, 지역의 대부분의 건축사들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은퇴를 앞둔 동년배 건축사님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은 여유 있게 설계를 하고 싶다. 이백권이 넘는 돈에 관한 책을 코로나 기간에 읽으며, 길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노우볼을 만들고 키우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하기에 협회가 그 일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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