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 한국건축단체연합(FIKA)은 ‘대한민국 공공건축 설계공모를 진단하다’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국민에게 품격 높은 건축물을 제공하기 위한 설계공모의 공정성, 전문성, 투명성 담보와 그 방안을 논하는 자리였다. 몇 년 전부터 공론화된 설계공모 제도는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과제가 건축계의 암 덩어리가 되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는 설계공모 등 입찰 과정을 통과해 공공건축의 설계계약 체결과 업무수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불합리한(건축사에게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문제들이다.
과소 책정된 공사비, 그 공사비요율로 산출된 설계비, 설계비 내역서에서 누락된 각종 인증, 영향평가, 경제성·안정성검토, 설계안전보건대장 작성, 설계의도 구현 업무 등, 그러나 과업지시서에는 그 모든 업무를 포함시켜 놓아서 계약조건의 충돌이 발생해도 ‘갑’의 의견대로 어쩔 수 없다며 진행되는 변경·추가 업무들, 장기프로젝트의 경우 차수별 계약으로 진행되며 고무줄마냥 늘어나는 업무중지 기간, 기실 그 업무중지 기간은 공문상의 명분일 뿐 실제 건축사의 업무는 진행돼야 하는 현실 등 공공건축을 진행해 봐야만 알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문제들을 겪어 내는 건축사들의 대응방안은 대략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이게 내 운명이구나 생각하고 감내하며 몇 번 당한 후 다시는 공공건축은 안 한다며 손절하는 타입, 두 번째는 국가계약법, 기재부 계약예규·일반용역계약조건을 검토하며, 계약담당공무원과 일단 협상을 시도해 보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는 타입, 세 번째는 법을 연구하고 활용해서 내 권리를 끝까지 획득하는 유형이다. 그동안 여러 모임에서 같은 관심사를 갖는 분들의 얘기를 듣던 중 세 번째 유형으로 돌파구를 찾는 분들의 국가계약법 활용팁을 정리해 아래와 같이 공유한다.
1. 국가계약법을, 법 취지를 근간으로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특히 건축사 업무와 관련 있는 국가계약법 제19조(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계약의 원칙), 제64조(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제65조(설계변경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 제66조(기타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은 앞서 말했듯이 법의 취지를 살펴 주장해야 한다.
건설공사가 기본이 되어 있는 법령의 단어들에 좌절할 필요 없다. 계약의 원칙은 “계약상대자의 계약상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하여서는 아니된다”이고, 제64조는 지수조정률(기술자 인건비 상승률)이 3/100 증가 시 적용가능하며, 제65조는 “⑦제1항 내지 제6항의 규정은 용역계약에 있어 계약금액 조정 시 이를 준용한다”고 되어 있다. 제66조는 “등”의 의미가 아주 중요하다. (법령, 계약서에서 “등”의 존재는 엄중하다) “공사·제조 등의 계약에 있어 공사기간·운반거리의 변경 등 계약내용의 변경으로 금액조정 시에는 이를 조정한다”는 것은 설계내용의 기타 변경 시에도 적용가능하다는 취지다. 기재부 계약예규 內 용역계약일반조건, 제2장 일반용역계약조건 또는 과업지시서와 상충하더라도 상위법인 국가계약법이 우선이니 위의 취지대로 주장하면 된다.
2. 앞서 1항을 베이스로 하여 계약 시 실천전략은, 1) 계약 시에 발주처가 산출한 내용대로 설계내역서를 작성해 첨부해야 한다. 연면적, 예정공사비, 시설별 2종·3종 구분, 도서작성수준(중급인지 상급인지), 업무범위(계획, 중간, 실시설계, 발주처 설계비 내역에 있는 추가업무내역)를 구체적으로 명기해야 한다. 2) 발주처의 일정에 기반하여 설계일정표 작성 후 계약서에 첨부한다. 3) 만약 계약 시에 1), 2)의 과정을 못 갖췄다면 착공계를 제출할 때 꼼꼼히 앞서 언급한 주요내용을 포함해 작성·제출한다.
3. 계약을 이행할 때는 공문으로 소통해야 한다. 1) 계획설계 단계에 대안 1, 2, 3은 공사비, 층수, 연면적을 명기하고, 최종안 결정은 공문으로 받아야 한다. 2) 이후 면적이 가감되면서 업무량이 증가되고 공사비가 증가되면 증액 요청하고 3) 내역에서 누락된 인증 등 업무는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추가계약을 요청하며 4) 공문을 놓쳤다면 회의록, 주간업무보고서 등에 기록을 남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건 체결한 계약서와 업무조건이 상이할 때, 집요한 협상을 통해 변경계약을 해야 한다. 공무원도 ‘법’이나 ‘감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또 포지션도 순환된다. 그들도 열심히 자기 일하는 거고 건축사는 건축사대로 할 일을 해야 한다. 공공계약은 건축사법 19조의 3에 따라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을 적용하여 발주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내 권리를 협상으로 주장해보고 말이 절대 안 통하는 공무원을 만났다면 앞서 말한 전략대로 조용히 계약이행을 완료한 후 소송을 통해 해결하자. 증빙자료만 잘 준비되어 있다면 국가계약법은 건축사의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