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고등학교 2학년 이었던 나는 버스차창 밖으로 티(T)자를 들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를 투영해 보고는 건축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에 나의 진로를 결정해 버렸다. 그저 나의 적성에 맞을 것 같고. 재미있어 보이고, 폼(?)도 날 것 같고, 뭐하나 정확한 정보도 없이 전공을 결정했었다. 집안에서는 여자가 무슨 건축과를 가냐(그때는 그랬다 건축과를 가는 여학생이 드물었으므로)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축의 길에 들어섰고 이제 내 인생의 절반이상을 이 길에서 보냈다.

돌아보면 무수한 날들의 야근, 밤샘작업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 즐거웠고, 같이했던 고생도 추억이 되고, 프로젝트 끝나면 동료들과 소주 한잔 마시며 나누던 대화도 즐거웠다.

작년 가을 고3이던 큰 딸아이가 자기가 심사숙고 했노라 하면서 건축을 전공하겠노라고 할때 까지만 해도 그저 건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나 하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저 나의 직업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도 내 나이의 여자가 건축사라는 자격과 전문직으로써의 적당한 대우와 시선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내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했다.

하지만 내 딸아이가 나와 같은 길을 가겠노라 했을 때... 나는 망설여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반대의사를 표현했고 그런 나에게 “왜?” 라고 물으며 의아해 하던 딸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름 딸아이의 눈에는 엄마가 멋있게 보였나보다,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직업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그런 나의 대답이 당연히 의외였을 것이리라.

딸(이 길에 모든 후배들에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타인에게 포장하여보여 주었던 내 일에 대한 실상을 20여 년 전 그저 막연한 기대감과 티(T)자를 들고 서있던 여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을 선택했던 그 여학생처럼 순수한(무모한...지금은 이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이 아이를 무슨 말로 설득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옹색한 나의 대답은 “매일 야근하고, 그것도 모자라 철야. 수입도 그렇고...그런 엄마 모습 보고 고생스럽겠다 생각 안 해봤니?”

“너희들 어릴 때도 매일 바쁜 엄마는 너희들이 아픈데도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아침마다 자는 너희들 깨워서 놀이방으로 보내야 했고, 저녁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제일 늦게 데리러 왔던 엄마. 기억 안나니?”

“다른 직업도 있잖아 이 일보다는 힘 안 들고 좀 쉬운 직업 없을까?”

“.....글쎄.” “엄마. 그런 직업이 뭔데?” “.....글쎄.....”(정말 모르겠다! )

딸 아이가 본인이 무엇을 했으면 좋을지 엄마인 내가 조언해 달라는데 나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오직 이 길밖에 모르는 요즘말로 나는 <건축바보>다.

건축학과에 입학한 딸아이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엄마...건축하는 사람들은 정말 재주도 많고, 똑똑 해야겠어. 학교에 입학해 보니 정말 똑똑하고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아“ 그러면서 본인도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과제하느라 밤을 세우는 날이 있는데 말로는 힘들다 하지만 얼굴은 한없이 즐거워 보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지금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아이의 엄마로써 이 길의 선배로써 뒤늦게 책임을 느낀다.(벌 받는 느낌이다) 우리 아이가 졸업하는 5년 후, 그 짧은 시간에는 지금 이 상황보다 많은 변화를 이루어 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땀 흘려 노력한 만큼 평등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어 나의 딸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보여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즘 서울 건축사회 여성 TF팀으로써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과 MOU를 체결하고 “여성행복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번 건축산업대전에서 홍보부스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이 행복하면 나아가 그가 행복해 진다는 것을 왜 모르시는지... 도리어 왜 여자만 행복해야 하느냐고 억울해한다. 이런 좁은 생각의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을 있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나만을 생각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우리를 생각 하고,내가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가 되어줄 것인지 말이다.

나의 아들, 딸, 그리고 내 동생이 나의 후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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