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토요일 아침 일찍 05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밤새 비가 와 있었다.
 일기예보에 오전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미리 다 온 줄 알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떠나니 06시가 조금 넘었다.
 오래간만에 북한산에 가 몸도 단련하고 사진도 찍어 볼까 생각 중이었다. 06시가 넘었는데도 컴컴하다. 전철을 타고 구파발역에 도착 다시 버스로 산성 매표소입구로 이동 한다.
이때가 7시 20분인데 어둠이 아직까지 깔려있다. 몇 사람이 앞서 가고 있다. 백운대 길 쪽으로 방향을 트니 인적이 없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나뭇가지에는 눈이 수북이 쌓이고 노적봉에도 흰 눈에 모두 덮여 멋진 설경을 그려낸다. 등산길은 발자국이 있지만 모두 눈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이 더러 보인다. 마치 내가 처음 올라가는 것처럼 한발 한발 전진한다. 싸릿눈이 좀 큰 눈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등산객 한 분이 뒤에서 보이더니 내가 잠시 쉬는 사이 앞으로 추월해 올라간다. 다행이다. 앞서간 발자국의 행적을 따라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발을 잘못 짚으면 낙엽 쌓인 길처럼 무릎까지 발이 빠진다. 이럴 때 스틱이 있으면 좋은데 카메라를 갖고 다니다 보니 오히려 불편해서 놓고 다니게 되어 아이젠 하나에 의존하니 힘들다. 다음부터는 스틱 하나라도 갖고 다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숨을 몰아쉬며 위문 가까이 올라가다보니 앞서 올라 간 등산객이 벌써 내려온다. 사연을 물어보니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올라갈 수가 없어 백운대 가다 중간에 발길을 돌려 하산한다고 한다. 위문에 올라가니 도선사 쪽에서 올라 온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나이가 좀 드신 분이 서 있다. 이분도 짐이 큰 것을 보고 물어보니 사진을 찍는 분이다.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쌓인 눈이 많아 한숨을 내쉰다. 이 위부터는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사진 찍을 엄두가 안 난다. 장갑은 다 얼어붙었고 여분의 장갑도 없다. 추위와 시름하며 몇 장의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산을 휘감은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기미가 없다.
하산을 하다 보니 햇빛이 난다. 아쉬운 생각이 난다. 자리를 펴고 싸온 도넛 두개와 귤, 커피로 달콤하게 시장기를 채운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아직도 산에 있냐고 떡볶이를 사오라는 전화다. 커피 한 잔을 먹으면서 앞을 보니 잠깐 잠깐 나뭇가지에 걸린 눈송이가 햇빛에 비춰 아름다움을 뽐낸다. 다시 카메라를 꺼낸다.
 짐을 챙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거의 다 내려가서 한 200m를 남겨놓고 문제가 발생한다. 긴장이 풀렸는지 발을 잘못 짚어 미끄러져서 뒤로 발랑 자빠졌는데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두 번이나 발을 겹질린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대로 누워 있는데 지나가는 등산객이 고맙게도 부추겨주어 간신히 일어 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발에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분은 상태를 보더니 119에 신고하여 구조 요청하고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말을 듣고 신고하니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동안 또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어 구조대원들이 몰려든다. 응급조치를 간단히 해주면서 나보고 몇kg이냐고 물어 보더니 ‘휴∼’하고 한 숨을 내쉰다. 그래서 나는 옆에서 부축만 해달라고 했다. 발목이 부러지지만 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119구급차에 내 생전 처음으로 실려 병원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후송된다. 병원에는 집사람이 먼저 나와 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아보니 다행히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 않았고 인대가 많이 늘어나 기브스를 하면 나아질 거라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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