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축사라면 누구나 건축 인허가 과정 중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고단한 기억을 새록새록 생각나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 글의 주인공이 되어 감정이입 되기에 충분했고, 그래서인지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글을 간단히 소개한다.
글쓴이가 어느 지역 공공건축심의위원으로 참석하면서 겪은 일이다. 새내기 건축사로 보이는 젊은 건축사가 맡은 공공프로젝트였는데 협소한 대지로 인해 설계조건이 까다로웠음에도 글쓴이가 보기에는 꽤 괜찮은 설계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함께 참석한 심의위원들이 도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설계를 수정하라는 지적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가 보기에는 그 지적이 심히 부당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설계에 적용할 수도 없는 내용이라 결국 본인이 심의장에서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답답한 마음에 SNS에 글을 올리게 됐다는 내용이다.
공공건축 설계를 진행하다 보면 설계 한 건 당 다수의 심의를 받는다. 지역이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은 이렇다. 건축위원회심의, 경관위원회심의(건축위원회 심의와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기술자문위원회심의, 공공건축위원회심의, 건축구조전문위원회심의(구조안전심의), 신·재생에너지 설비 면제심의(불가피한 이유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해당 계획안에 정해진 법정 비율 이상 설치하지 못할 경우에 해당된다.), 장애물없는 생활환경 인증심사(이하 BF인증심사) 등이 그에 해당된다.
경관위원회 심의는 경관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건축계획, 구조, 설비, 토목 등 각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심의위원분들의 자의적 기준 또는 해석에 의한 개선이 요구되며 그 요구 또한 두루뭉술하다. 간혹 심의위원 간 의견도 상충되어 어느 의견을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또한 심의장 내에서 발표자에게 과도하게 큰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서 발표자를 꾸짖는 심의위원까지 있다.
2007년 경관법이 제정되었을 때 나는 우리나라 도시경관이 매우 중요한 변화를 맞이할 거라 믿었고 해설집을 구매해 나름의 공부도 시도했으나 경관법은 현재 나의 업무를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심지어 경관심의를 거쳐야 한다면 그 설계용역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계획한 설계안이 심의위원분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한 막연한 반대 또는 불합리한 이유로 불가피하게 변경돼야 할 때 오는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다.
획일적 기준으로 인해 개선이 필요한 심의도 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면제심의가 그렇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의 획일적인 예상 에너지사용량(A) 산정은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어느 지역에 어떤 용도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짓느냐에 따라 자동으로 예상 에너지사용량(A)이 결정된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설치되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비율(X)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생산량(A×X)이 결정되며 이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설비 계획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를 많이 쓰지 않고 사면이 다 오픈된 건축물임에도 예외를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 심지어 그 비율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구조물까지 설치를 강요받아 예산 낭비를 초래하기도 하고, 도시미관을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해당 심의는 한 번에 끝나기가 매우 어려워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에 있는 에너지공단 본사까지 수차례 왕래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BF 인증은 취지만 놓고 본다면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건축사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위원분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도면을 잘못 이해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왜 자기를 가르치려 드냐며 역정을 내는 심의위원도 보았다. BF 인증 심사위원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만나본 위원들의 태도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2021년 12월 4일 이후부터는 별개의 건축물로 증축하는 경우에도 BF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기존 건축물에 증축을 하는 경우는 아마 인증을 취득하기가 훨씬 더 까다로우리라 생각된다. 기존 건축물까지 모두 기준을 충족해야 해서다.
몇몇 심의를 경험하면서 나는 몇 가지 바람이 생겼다.
· 소규모 공공건축물에 대한 심의절차가 간소화되면 좋겠다. / · 심의의 성격이 자문의 성격으로 변경되면 좋겠다. / · 심의가 상호 간 토의의 장으로 변경되면 좋겠다. / · 불필요한 심의는 과감히 없앴으면 좋겠다. / · 심의위원의 자격이 없는 분들은 스스로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 · 설계자 또는 발표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심의였으면 좋겠다. / · 잘한 부분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 · 분야별 명확한 심의 기준과 범위가 확립되면 좋겠다.
처음 SNS에 글로 돌아가서 그 글쓴이 분께 감사하고 싶다. 심의 석상에서 글쓴이의 행동은 설계자의 노력에 대한 마땅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심의장에서 설계자를 옹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혹여 설계자에게 금전적 이익을 받았는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심의는 현재 부작용이 심각하다. 그 부작용을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되돌아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