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윤정 건축사
호윤정 건축사

최근 몇 년 좋은 방향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든,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이 변화를 잘 따라잡지 못해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건축계와 건축문화의 더디지만 작은 변화와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고 그 방향성이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라는 직관이 나를 안심시킨다.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세종에 내려와 열정 하나 장착하고 호기롭게 사무실을 개소한지 만 9년이다. 1년만 지나면 10년인데 그간 무엇을 했나 되짚어 보면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러한 와중에 그래도 하나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 있다면 건축 설계에 대한, 그리고 건축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적어도 이 지역에서만큼은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종에서 진행했었던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단독주택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건축물들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니 하나둘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고, 또 긴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 세종에 사무소를 개소하고 만났던 건축주들, 시공사 관계자들은 여러 의미에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그 때부터 건축주들에게는 건축사가 건축주들이 원하는 바대로만 그림 주려주고 인허가 내주는 사람이 아님을, 시공사 관계자들에게는 건축계는 계속해서 변모하고 있고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하던 방식대로만 고수해서는 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음을 피력해왔다.

그 때만해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이 드물었다. 이는 사무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버텼다’. 그러다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고 패기 있는 건축사분들이 주변에 늘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건축주들이 달라졌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하여 이미 어느 정도의 공부를 마치고, 좋은 건축물의 시작이 좋은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른 시공사들의 변화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건축사의 철학과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꺼이 협업하고, 좀 더 좋은 건축물을 구축하기 위해 발전된 공법과 기술을 공부하고 도입한다. 이러한 변화에 건축사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거창하게 한번 표현해 보자면 우리의 건축 문화가 더디지만 분명히 발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와 성장이 최근 더 빨라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시기를 골든타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몇 가지 숙제들이 있다.
  
첫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지나친 규제의 틀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둘째, 사고가 날 때마다 갑작스럽게 바뀌는 건축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셋째, 여전히 존재하는 과거의 관습과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넷째, 건축 문화의 발전과 건축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정보전달과 홍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느꼈던 짧은 생각을 몇 자 적어보았다. 이러한 흐름가운데 나는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내야 할지 다시 고민해본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