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변화시킨 것과 작금의 건축현실, 현재의 나의 건축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직장과 달리 대학생활은 배움에 대한 열정보단, 동아리 활동 등 낭만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학교 커리큘럼과 교수님들의 에스키스(esquisse)는 공간에 대한 고민과 환경을 이해하려 무수히 많은 책들을 찾아 읽게 했던 것 같다.
대학교육은 각 학교별 커리큘럼에 따라 나름의 개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 인증제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는데, 성과를 인증받기 위한 준비로 인증을 위한 인증이 돼버린 측면이 있다.
건축사사무소 입사 후에는 공모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주로 했다. 남의 생각을 다이어그램과 글로 표현해야 하는 일이었다. 설계공모의 당락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도 사회적 분위기에 어느 정도 휩쓸려 그냥 묻어가려고 했음을 고백한다.
사무소 개업 후엔 두려움과 내 이름을 내건 작품을 현실화 시키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미사여구와 유명 작가의 언어, 스케치들로 나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위한 포장에 익숙해지는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다. 수준 있는 건축주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고, 도면과 외관 스케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최대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생각, 그리고 내부 공간구성에 대한 고민은 점차 사라져 대지 주변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자기만족을 위한 빈 껍데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좋은 건축주란 어떠해야 할까? 매월 발간되는 건축잡지에 멋진 사진의 건물과 유명세의 건축사들의 작품을 보면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그들의 무한한 열정, 노력이 수반되었음을 짐작해 본다.
지방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현실이다. 너무나 보편적인 디자인과 택지·산업단지개발지구의 경우 일정 규모의 대지크기와 면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토지 소유자들은 상당수가 집장사들이다. 변하지 않는 설계비와 부동산업자들의 머릿속에서 공간구성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소위 가도면을 통한 평가와 분석으로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건축사들은 드로잉과 인허가 비용 정도를 대가로 받는 형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건축주들이 설계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건축사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듯하다. 더불어 지방에선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해 공공건축 발주 전 기획, 자문 등이 이뤄지며 공공건축에서 여러 변화가 일고 있다. 이것이 민간건축에도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하길 바란다.
지역 인력난은 점점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경력직 사원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신입사원은 지방과 소규모 개인사무소를 꺼려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체로 서울과 대도시의 규모 있는 다소 안정적이고 선망하는 사무소만을 고집하여, 건축사가 건축사에게 도움(알바)을 요청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를 위해 지역소규모 사무소 취업을 위한 방안으로 지역학교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습과정을 통한 실무와 현장 시공과정, 재료와 법적 사항 등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아틀리에 사무소의 설계실무와 현장을 통해 소규모건축물 현장에서 풀어내는 디테일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나는 대학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학생들에게 실무적인 환경에 대한 접근과 사고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증제 프레임 속에 다양한 학습 형태로의 개선은 또 다른 숙제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도 특정 지역의 아파트 분양 청약률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불확실한 경기에 확실한 투자처를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건축사도 이러한 사회 흐름에 맞춰 더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나를 변화시킨 것과 변화된 나를 되돌아본다. 지역 건축문화의 수준 제고를 위한 공공건축 발전에 대한 관심과 민간건축의 특성을 고려한 품질 향상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