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妨電)

- 김순선

덤으로 보내오는 전자메일에
얼버무리는 미소에
뜸들이는 미소에
슬쩍 비껴가는 발길에
잡자마자 푸는 손길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사과에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말에
슬그머니

틈틈이 주변을 살피는 눈길에
의자 뒤로 물러앉는 엉덩이에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에
중얼거리며 내쉬는 한숨에
서둘러 돌아서는 발길에
며칠째 열어보지 않는 메일에
내내 호주머니 속에 머무는 손에
남은 것마저

 

 

- 김순선 시집 ‘토르소’ 중에서 /
  지혜 / 2022

1연과 2연으로 딱 갈라 떨어진 시 구성이 눈길을 끈다. 대부분 기승전결이거나 3, 5, 7, 9가 이야기 전개상 구성적이다. 그러나 이 시는 두 연으로 이루어져 한 연은 의례적인 거리가, 두 번째 연에는 이미 떠난 마음의 형식들이 있다. 의례적인 행동은 “슬그머니”로, 떠난 마음은 “남은 것마저”로 대변된다. 일연과 이연은 한 행 한 행이 정확히 대구를 이루지는 않지만 일부러 대구를 섞어 놓았음이 짐작된다. 더 어지러워졌다. 타인에 대한 나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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