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날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 처마 끝 길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 아른 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 고와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 지고 / ...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한복을 입은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하늘로 날듯이 길게 뽑은 전통한옥의 추녀와 처마를 배경 삼음으로서 한국의 고전미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조지훈 선생의 '고풍의상' 중 일부이다.

한국의 미를 말할 때 우리는 위의 싯귀처럼, 한옥의 유려한 선과 여인의 한복과 버선의 선을 말한다. 한 중 일을 돌아본 외국인들 중 상당수는 중 일과 다른 한국의 선을 발견하고 찬탄하며 스케일이나 기교를 떠나 한국의 건축을 사랑하며, 어떤이들은 아예 눌러 앉아 목수 수업을 받는 이들도 있다.

한옥지붕의 처마곡선은 추녀로부터 시작된다. 추녀의 길이와 형태는 지붕처마 곡선에 절대적이다. 그래서 예부터 도목수는 추녀를 만드는 비기를 아끼는 제자에게만 전수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이 남아 있어 지금도 어떤 대목들은 은밀하게 추녀 먹을 놓는다고 한다.

추녀 끝에서 추녀 끝으로 이어지는 처마의 생동하는 리듬감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깊은 그림자로 인한 음양의 조화, 공간감의 확대로 인한 안온감도 추녀만이 갖는 특성이다. 여름 장맛비나 태풍의 들이침을 막아줌으로써 벽면을 보호하고 창문의 창호지를 젖지 않게 하며, 쑥, 마늘, 장작 등의 건조 내지 저장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며, 애경사에는 반 실내공간으로 비좁은 집을 확장시키기도 하는 등 실용성 또한 크다. 그 뿐 아니라 처마 밑의 공간은 대류현상으로 인해 추위와 더위를 완화시킴으로 한서차가 많은 한국의 실정에 안성맞춤이다.

이러한 처마깊이는 산출법이 따로 있지만 민가의 경우 대략 1.2m 내외이다. 그런데 기둥 밖 1m 이상은 건폐율과 건축면적에 산입하는 건축법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찾는 유적지 등 한옥지구 내의 대부분 한옥은 60-90cm으로 줄어 대부분 꽁지 빠진 새가 되어 버렸다. 주변 유적지와 조화를 꾀하고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본래의 취지가 행정의 후진성과 함께 부끄러움만 더하고 있다. 금번 건축법 개정으로 한옥에 전기를 마련했다는 내용에도 이런 근본적 해결책은 없으니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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