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들에게 건축설계비는 영원한 숙제다. 각종 공공 영역에서 건축사가 일정 역할을 대행하면서 전문 영역에 부합하는 합당한 대가를 수차례 언급하고 있는 가운데, 과연 건축사는 설계비와 업무비용을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걸까. 유독 공공분야에 건축사들이 대가의 현실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0년 공공건축물 설계비가 요율 평균 3.4% 정도 인상됐다고는 하나 지난 20년간 거의 변동 없었음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 사이 전기나 소방 등은 건축사사무소의 외주비 지급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서 발주처가 직접 지불토록 시스템을 바꿔 버렸다. 일종의 제로섬게임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의 설계비 지급구조에서 한 축이 명확해지니, 건축사들의 실질 설계비는 줄어들었다.
공공건축 설계를 진행하면 업무 대가에 대한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초기 예산 확보 시점의 물가와 그에 따른 공사비는 설계가 완성되고, 공사비 내역을 제출할 시점이 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착공 시의 공사비 증액은 쉽지 않아서, 상승한 공사비를 상한으로 해서 낮추려면 설계를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른바 설계변경인데, 문제는 규모를 줄여야 공사비를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이 생긴다. 바로 면적이 줄어들 경우 설계비도 되레 깎으려 한다는 점이다. 면적이 늘던 줄던 설계변경으로 건축사는 업무를 두 번 하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면적 증감과 상관없이 설계비는 증액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해당 공공건축 발주처의 재무팀이나 예산처는 난도질 하듯 예산을 주무른다.
더 황당한 것은 설계비는 대체로 2급 중급을 기준으로 하면서 설계 과업 지시서는 상세 수준이 상급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과 업무 요구 내용이 맞지 않는 것이다. 법적 책임과 반복적인 사업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국내 건축사들은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내고 있다. 당장 수많은 직원들 급여를 줘야 할 것 아닌가? 벌점도 받지 않아야 하고….
그뿐 아니다. 논란 많은 준공업무대행 비용의 경우도 일부 지자체는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비용이라면 준공업무 대행 전문 건축사 별정직을 선출해서 공무원화 하던지, 전 건축사들이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된다.
설계비가 현실화되지 않고 있으니, 건축사들이 자꾸 조금 더 용이한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어이없게도 행정당국 역시 본질적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자꾸 이런 부차적 방법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당장 해체 관련 업무나 준공업무 대행, 유지관리 등 부수적 업무를 늘려가고 있다. 가지에 가지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제도의 세분화와 복잡함은 책임에 대한 불분명함을 만들어 낸다. 그뿐만 아니라 건축사의 모든 영역과 업무를 세분화해서 분리 계약하는 개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지 원점에서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나치게 나누고 세분화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건축 디자인에 대한 법적 영역과 권한, 책임까지 분리하는 시도가 가능해진다.
최악의 경우 법적 인허가와 기술적 책임에 대해서 육체노동투입시간만 계산하고, 지식과 경험 판단에 대한 지적 자산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지식 노동자에게 육체노동가치만 지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건축사의 업역이 지식창조 산업임에도 말이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게 아닐까.
- 기자명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 입력 2021.11.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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