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건축사
김인숙 건축사

사무실 개소를 결심하기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길인 까미노로 떠났다. 까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엔 까미노는 무탈한 순례길을 기원하며 순례자들끼리 주고 받는 인사다. 안전하고 부디 목적한 그 곳에 다다르길 바라는... 프랑스 생장 피에드 포트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775킬로미터의 긴 여정으로 지금은 길도 좋아졌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쉼터도 많아 훨씬 걷기 좋아졌지만 그래도 꼬박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걸어서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지도 3년이 지난 시점으로 확실히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 서 있음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길을 떠났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무실을 개소한지 어느덧 5년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대표 프로젝트가 없기에 걸음마 단계의 새내기 건축사임은 틀림없지만 지금도 그 때의 그 길을 종종 떠올린다.

배낭을 싸는 일부터 까미노의 여정은 시작된다. 자기 몸무게의 10%를 넘지 않는 무게의 배낭을 싸야하지만, 욕심을 채워 넣다 보면 가방 싸는 일마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국엔 적당한 타협으로 여정을 시작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멀리서 애써 들고 온 짐들을 하나씩 버리게 된다. 걷기 시작한 며칠은 그저 아프기만 하다. 어깨에 멍이 들고 물집이 터지고 무릎이 아프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면 그 아픔에 익숙해진다. 배낭이 더 가벼워졌다거나 길이 더 평탄해졌다거나 내 몸이 일주일 만에 천하무적이 된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여정 중엔 다른 순례자의 도움을 종종 받게 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할 때 한 순례자가 자신의 무릎 보호대를 벗어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여정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지면 비로소 풍경이 보인다. 컴퓨터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갑자기 풍경이 아름다워진게 아니라 내가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몸이 고단할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익숙해지면 보인다. 그 경험은 까미노 여정 중에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다. 상황은 같지만 ‘나’의 문제로 전혀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까미노의 목적지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아니었다. 여정 그 자체였다. 

크게는 인생 자체가 까미노와 닮아 있지만, 사무소를 개소하고 시작하는 새내기 건축사에겐 다시 새로운 까미노가 시작된 것이다. 생전 처음 사무실 개소를 준비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일이 없는 하루를 불안과 공포로 지내기도하며 막 걸음을 땐 새내기. 이제는 제법 바빠지고 함께 일하는 식구도 생겼지만 아직 ‘익숙’한 단계는 오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선배의 말처럼 건축사는 모차르트와 같은 꼬마 천재는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수많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훌륭한 건축사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까미노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의 그 길을 걸었을 때처럼 여정 그 자체에, 매 순간 놓치고 지나는 풍경이 없는지 집중하려 한다. 
지금 시작점에 서 있는 모든 건축사에게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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