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 함민복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
세계사 / 1993
이제는 이 시와 같이 전화를 붙들고 오기로 한 사람에게 약속 장소를 설명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스마트폰 이후 주소를 검색하던가 상호를 치면 지도검색을 이용해 누구나 쉽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이 시가 발표된 당시만 하더라도 시인은 우리가 얼마나 상업주의에 쉽게 노출되는지 드러내려 했다. 상업주의가 아니면 무엇이 있을까 싶은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이 가리키는 데로 길을 걷는다. 상업 간판을 보고 길을 찾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더 심화된 지금 상업 간판은 그저 거리의 하나의 풍경일 뿐이다. 무엇이 이 거리를 독점하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