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 건축사
김연호 건축사

원고 제의를 받고 특별한 주제를 고민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 속 불면의 밤을 보낸 끝에 결국 지금까지 건축설계를 해오면서 느꼈던 생각들에 대해 편히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글쓰기에 재주가 없을수록 가장 친근한 이야기를 해야 읽는 분들도 좋으실 테니 말이다. 주제는 ‘나의 일’이다. “당신의 일은 건축설계 인가요?”라는 자문에 지금의 나는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건축사시험에 합격하고 건축사사무소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질문과 대답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건축사를 말 그대로 ‘나의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돌이켜보면 참 많은 고민의 날들이 있었다.

건축과 졸업 후 우연한 계기로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했고 열심히 도면을 그렸다. 점점 경력이 쌓이게 돼 건축주도 자주 만나게 되고 시기마다 바뀌는 법을 검토했다. 경력에는 ‘~학교 졸업’, ‘건축사사무소 근무’ 등 두 줄로 정리되지만, 그 두 줄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고민들이 참 많았던 날들이다. 그 시절 도면 그리기는 역시 어려웠고 건축주와의 만남은 언제나 떨리고 어려웠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면 과연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혼자 골똘히 생각했다. 그래도 경험이 쌓이니 일의 효율은 올라갔다. ‘경력자’가 된 것이다.

기능으로서의 ‘일’을 처음보다는 잘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고민은 남았다. 일이 익숙해질수록 ‘건축’ 전공을 선택할 때 느낀 건축의 개념과 실제 사무소에서 설계를 기획하고 계획을 잡고 입면의 디자인을 수행하는 실무의 차이가 더 많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은 ‘건축’하면 화려한 외관만 떠올리지만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며, 화려한 외관을 만들기까지 건축사들이 기울여야 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깊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건축사 자격을 획득하고 8개월 정도 사무소 운영도 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민의 시간이 막연한 꿈에 현실의 옷을 입힐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머리와 손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현실은 항상 녹록치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법을 찾아 찾아주는 고객들에게 ‘건축’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리는 것, 나아가 내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현실에서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지금 떠올리는 ‘나의 일’이다. 아직 사무소를 연 지 8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아 대규모 설계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 고민의 날들을 떠올리며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고객에게 건축에 대해 잘 전달하려고 노력중이다. 지난 고민의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효율로서의 일은 친숙하기는 하지만 좌절할 정도로 추상적이다. 우리는 일하러가고, 우리는 일을 끝내며, 우리는 뭔가에 대해 일을 한다. 이는 끝내야 할 과업 또는 달성해야 할 산출물인 것이다. 이는 어떻게 우리가 시간을 소모하고 정신적 및 육체적 자원을 투입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이게 우리 건축사들이 평생을 바쳐야 할 일의 전부라면 허망하다. 일에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내가 건축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일이 나의 일이 맞는지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해오다 보니 어느덧 내 꿈을 담은 나의 일이 되었다.이제 다른 고민을 시작한다. 건축사로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그릇에 소중한 삶을 담을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지면을 빌어 건축사 시험 준비 당시 육아를 전담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긴다. 나의 일은 건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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