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열 건축사
하동열 건축사

공공건축가제도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시작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공공건축가제도의 모범적인 사례는 영주시다. 영주시는 우리나라 보물급 건축자산이 많다. 아마도 과거부터 부석사, 소수서원 등 양질의 건축을 만들어 지켜오는 저력이 있고, 시민들의 의식 속에 좋은 건축은 좋은 자산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영주시의 공공건축가제도 성공 과정을 살펴보면, 2007년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을 시작으로 2010년 시장 직속으로 디자인 관리단이 설치되면서 공공건축가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된다. 이후 공공관리 단장과 공공건축가 3명으로 영주시 공공건축을 총괄하면서 공공건축의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영주시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관 주도의 적극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고 건축사와 주민에게 자리를 양보해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여기서 예산이나 절차를 미리 정하지 않고, 건축사와 주민을 중심으로 공간의 규모와 프로그램을 확정한 후 예산을 정했다. 또는 주민자치단체의 의견에 따라 예산을 탄력적으로 추가하기도 했다. 물론 성공의 이유가 예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관·건축사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접하는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성공적인 사례만 보이고 실패한 사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실패라는 과격한 표현보다 성과가 미비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성과가 미비한 이유를 하나의 원인으로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공공건축사업에 대한 자문이다. 각 시군 혹은 도에서 진행되는 공공건축사업 중 광역단체의 예산이 집행되는 사업에 공공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자문을 신청하여 각 사업과 매칭된다. 이런 자리에 가 보면 대부분 중요 사항이 결정된 상황이거나 설계자도 선정되어 있어 어떤 자문을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을 만난다. 결국 설계를 맡은 건축사와 잘 부탁한다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무리한다. 그 이후에 설계 진행 과정에서 자문 요청이 없다가, 설계 마무리 단계에서 자문을 요청하여 또 한 번 어색한 자리를 만든다. 용역기간도 도래했고 예산도 맞췄을 텐데 어떤 자문이 필요할까?

근본적인 문제를 건들지 못하고 설계는 마무리된다. 후에 완공된 건축물에 가보면 겉은 화려하지만 이용자의 수는 많지 않아 새로운 고민을 낳게 한다. 물론 담당 건축사의 잘못이 아닌 여전히 관이 주도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두 번째는 저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자문을 해보려 해도 예산에 발목을 잡혀 다양한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 물론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나 매번 그런 아이디어를 내긴 힘든 일이다. 겨우 자문을 마치면 늘 설계를 담당할 건축사를 소개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 예산이 적다 보니 설계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건축사를 알아보면 다들 설계비가 너무 작아 대부분 사양한다. 어쩔 수 없이 자문에 참여한 공공건축가가 설계를 진행한다. 결과가 좋고 나쁜 것을 떠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많다. 새로운 시도에는 새로운 예산을 측정해야 하는데, 과거의 사례로 터무니없는 예산을 결정하니 생기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사업과 전혀 관계없는 보기 좋은 사례를 토대로 자문해 달라는 요구다. 특히 수도권에서 성공한 사례를 결이 다른 지역에 그대로 복사하듯 결과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물론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여 적절히 담아내는 것은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 지역과 동떨어진 대도시의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사용자나 지역의 정서와 무관한 결과를 만들게 된다. 발주를 하는 관 입장에서는 단지 보기 좋은 결과만을 요구하여, 그것과 벗어나는 자문은 지면으로 남게 된다. 자문에 대한 결과를 모니터링하지도 않는다. 전국에 비슷한 공공건축물이 반복해서 생겨나는 이유일 것이다. 지역과 주민의 면밀한 분석이 부재한 결과이다.

다소 부족한 사례를 들어 좋은 과정을 지나온 공공건축물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과정과 좋은 결과를 만든 공공건축물이 더 많다. 군 단위 작은 초등학교의 학교 안 마을 배움터 사업에서 학생, 교사, 동창회, 주민, 그리고 공무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진행한 사업, 주민이 주도해 협동조합을 먼저 결성해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 건축 과정에 들어가는 사업, 건축사의 제안을 왜곡하지 않고 관에서 진행한 사업 등 과정과 결과 모두 훌륭한 사업도 많다. 이러한 성공사례는 대부분 관 주도이기보다 주민과 건축사의 주도로 끌고 가는 사업이다.

잘된 것과 잘못된 것에 대한 칭찬이나 질타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잘된 것에 대한 과정과 결과를 잘못된 것과 비교하여 보다 양질의 건축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에는 반드시 건축사가 개입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설계라는 일이 경중을 가려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기에 사업을 진행하는 건축사는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사업에도 항상 마음을 열고 사용자의 의견이나 지역성을 잘 살펴 잘못된 과정을 바로잡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관이 주도하여 사업을 만들지만, 그 사업을 끌고 가는 사람은 우리 건축사다. 모든 책임을 건축사가 떠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비단 공공건축가가 아니더라도, 공공건축물이 아니더라도 건축이 가지는 공공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공공건축가제도의 성공과 실패 이전에 우리 모두가 공공건축가라는 생각으로 한 발씩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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