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시인

- 한충자

시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 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 게
백지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 게 가소롭다

꽃밭에서도 벌과 나비가
모두 다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벌들은 꿀을 한 보따리 따도
나비는 꿀을 따지 못하고 
꽃에 입만 맞추고 허하게 날아갈 뿐

청룡도 바다에서 하늘을 오르지
메마른 모래밭에선 오를 수 없듯
배우지 못한 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만 못한

시, 시를 쓴단다

 

- ‘그을린 예술’ 심보선 / 
  민음사 / 2013년

이 시는 전문 시인의 시가 아니다. 충청북도 음성에서 평생 농사일로 생계를 이어 왔고 음성 노인 종합 복지관에서 시 쓰기를 배운 할머니의 시다. 시에 나오는 “뒷다리”는 한글 받침을 할머니가 부르는 말이다. 어떤 때 할머니는 밭일을 하다가도 하루 종일 시 생각만 났다고 한다. 이 책에는 또, 떠오르는 시상 때문에 회의 중에 잠깐잠깐 나가서 시를 쓰다 산만하다고 지적을 받는 저자의 모습도 있다. 시에 사로잡힌 모습은 배운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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