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운명은 참 짓궂은 것이다. 한 번도 살아보지도 못할 건물을 낳기 위하여 그는 얼마나 자주 그의 모든 영혼, 그의 모든 마음, 그의 모든 정열을 쏟아 놓는가, 라고 안타까워한 시인이 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대문호 괴테다. 어찌 건축사의 일을 그리 잘 이해하였을까 고맙기도 하고 역시 시인의 눈은 다르다 탄복한다. 건축사의 운명이 이리 박복한데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으니 늘 새롭게 강화되는 법이다.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사회적인 이슈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강화된 법이다. 바뀐 법을 대비하고 습득할 사이도 없이 수시로 강화되고 개정되고 있다. 포항 지진의 원인은 지중열 발전소 건설임에도 대책은 내진설계 강화와 구조기술사의 현장 감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고, 의정부 필로티 건물 화재의 대책 또한 건물 외관의 마감 재료를 규정하는 법 강화이며, 광주 철거 붕괴사고 이후 건축물관리법이 개정 중에 있다. 법이 이처럼 자주 바뀌어도 되는 것인가?
법의 한자 글을 파자하면 물수 변에 갈 거자가 하나로 합쳐 법이란 뜻을 갖게 된다, 물이 가는 길이 법이라는 뜻이다. 물은 커다란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결국 법이란 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무엇을 향해 이 길을 나아가는가를 먼저 이야기하여야 한다. 로마 시대 때 타키투스가 “옛날은 범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현재는 법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했던 말은 21세기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모든 법은 노인과 남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젊은 사람과 여자는 예외를 바라고 늙은 사람은 규칙을 바란다고 괴테가 법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필자가 여성이라 더 민감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법은 거미줄과 같다. 약자는 걸려서 꼼짝 못 하지만 강자와 부자는 뚫고 나간다. 법을 처음 만들 때 많은 생각과 대화로 먼바다에 다다를 물길을 제대로 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인공지능 AI를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AI)과 로봇, IoT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5차 산업혁명의 기계, 디지털에 다시 ‘인간적인 요소’를 추가한다는 것이다. 어떤 시대이든 결국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며, 사람의 문제를 가장 밀접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은 것이 건축사이다. 미래의 건축은 안전, 위생, 휴식,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하므로 자동차에 반도체가 있어 모든 것을 제어하듯이 AI 시대에는 컨트롤타워 시스템을 접목하여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공간을 제어하여 제공하는 건축이 등장할 것이다. AI 시대의 건축은 끊임없는 학습의 과정이고 늘 새로운 시도와 결과가 등장할 때 법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려 글을 맺고자 한다. “예술 중에서도 일반 민중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건축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생활 이상이 실제로 형상을 갖고 나온 것이다. 한 민족이 어떤 환경을 받아 그것을 자료로 삼아 어떻게 자기를 나타내는가 하는 것이 건축이다. 불교사원은 곧 불교요, 고딕건축은 곧 중세의 신앙이다. 우리의 건축도 우리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법이 이 시대 건축문화를 형성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