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밤
- 김경후
하수구가 막혔다, 염천교가 막혔다, 펄펄 끓는, 열대야, 원고가, 자금줄이 막혔다, 들끓는다, 밥알 라면 찌꺼기, 여기저기, 벌레, 오물, 들끓는다, 파봤자, 끙끙대봤자다, 경적, 경고 메일, 사이렌, 그래봤자다, 다시 해봤자다, 막혔다, 시커먼 구멍 속엔, 더 깊은 구멍뿐, 뚜껑, 없지, 틈, 우회로, 그런 거, 없지, 함정에 빠진, 환장하는 한밤, 끓고, 파고, 부글대며 막히는 것, 이래도 저래도, 하수구앞, 백지 앞이고, 꽉 막힌, 아스팔트 위다, 펄펄 끓는, 대야 속 생쥐 같은, 열대야,
- 김경후 시집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 2021년
여름은 위대했다. 더위는 식을 줄 몰랐고, 하늘은 구름과 함께 빛났고, 매미들의 울음은 어느 해보다 절절했다. 우리는? “대야 속 생쥐 같”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아직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우리가 계절을 이기기 위한 안간힘은 “그래봤자”였고, “해봤자”였다. 그래도 우리는 뭔가를 해야 했고, 그 사이에 절기는 이상기후 운운에도 불구하고 어김이 없었다. 위대했던 여름은 위대했던 만큼 위대한 기억을 남기고 위대하게, 장엄하게 지나간다.
함성호 시인
webmaster@ancnew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