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
궁남지(宮南池)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 사비시대의 궁원지(宮苑池)이다. 별궁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의 동쪽 일대에는 대리석을 팔각형으로 짜 올린 어정, 기와편, 초석(礎石)이 남아 있다. 1964년 대한민국 사적 제135호로 지정됐다.
궁남지에 대해서 《삼국사기》에 무왕 35년(634년)에 ‘3월에 궁성(宮城)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라고 되어 있다. 백제 웅진(熊津) 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터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함께 발굴된 바 있다.
무왕 37년 조에는 “8월에 망해루(望海樓)에서 군신(群臣)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고, 39년 조(年條)에는 “3월에 왕이 왕궁(王宮)의 처첩(妻妾)과 함께 대지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궁남지는 처음 만들어질 때 붙은 이름이 아니고 백제 시대에는 단지 대지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뱃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규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현재는 3만 3,000제곱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궁남지를 보다
연못은 자연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못의 가운데와 물가에는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 있고, 연못 주변에서는 토기와 기와 등 백제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동해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속의 섬이 바로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는 섬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동해 한가운데에 신선이 사는 섬인 봉래(蓬萊)·방장·영주(瀛州)의 삼신산(三神山)이 있다고 하여, 그 섬 가운데 방장선산을 본떠서 신선정원(神仙庭苑)을 꾸며 불로장생을 바랐던 도교적 사상과 관념이 표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궁남지 동쪽의 화지산(花枝山) 서쪽 기슭에는 궁남지 쪽으로 향한 완만한 경사지에 대리석으로 만든 8각형 우물이 남아 있고, 그 주변에는 많은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곳은 사비정궁(泗沘正宮)의 남쪽에 있었다고 하는 이궁(離宮)터로 추정된다.
따라서 궁남지는 이궁의 궁원지(宮苑池)였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궁남지는 1965년∼1967년에 연못 바닥을 준설하고, 가장자리의 언덕에 흙을 쌓고서, 수양버들을 심어 조성하였다. 전체 면적은 4만 2,900제곱미터 정도이지만, 발굴조사 결과 원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왕(武王)의 설화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 설화와 관련이 있다. 백제 시대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 가에서 홀로 살던 중 용신(龍神)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서동(薯童)으로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이다.
궁남지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궁원지(宮苑池)로, 조성 기록이 명확히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백제의 조경 기술과 도교 문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궁남지의 조경 기술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확인되듯이 일본에 알려져 일본 원지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한다.
매년 6월에는 수련이 피고, 7월이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린다. 가을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레 국화 전시회가 열린다.
궁남지는 규모와 정확한 구조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동아시아 원지 조경사 연구의 표준 유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여 궁남지 주소=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입장료 무료
[출처 :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