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은 잘린 부위에서 다시 자란다

- 진혜진

열 손가락엔 어제의 기분이 들어 있고 녹색은 가파릅니다

이력은 붙을수록 잘릴 위험이 큽니다 거스러미를 떼면 손톱의 기분은 낭떠러지입니다 할퀴고 할퀸 이력은 동물적 슬픔으로 자랍니다
밤새 부은 손가락의 손톱들이 벽시계 안의 초침처럼 쉬지 않고 기분을 만듭니다

잘려나갈 디데이를 찾습니다

여기 스투키를 보세요 밤새 자랐지만 열 개의 식물들은 딱딱합니다
믿음의 공기 앞에서 뿌연 아침을 보면 정말 정화를 꿈꾸었을까요?

위로 올라갈수록 살아나갈 디데이를 찾습니다

어떤 슬픔은 잘린 부위에서 다시 뻗습니다

 

- 전혜진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 상상인 /
  2021년

절정에 있는 시들은 거기서 압도한다. 절정에서 약간 비껴서 있는 시들은 이상한 틈으로 다른 공간을 엿보게도 한다. 그러나 절정과 평범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들은 재밌다. 불평 불만 투정 같은 것들도 있고 순간의 깨달음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 속에 통찰이 있다. 분명 무엇인가를 잡긴 잡았는데 나머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계속 변죽을 울리다 결국엔 잡긴 잡은 그것이 밑천임을 보여준다. 그럴 땐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변죽이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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