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희 건축사 - 해체업체 관계자 간 대담
최저가 업체 선정에 품질기준 없는 부실 해체공사만 양산
재발방지책으로 ‘상주감리 도입’ 능사 아니다
현 시스템대로라면 “상주감리는 책임만 강조된 독이 든 성배”
적격심사제 도입으로 해체공사 안전성 담보해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 사고는 해체공사 간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된 계기가 됐다. 또한 불법 재하도급, 분양 특혜 문제 등 감춰져 있던 공사 간 문제점들도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비상주감리계약을 맺었음에도 감리자가 “현장에 없었다”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건축물관리법에 따른 건축사의 책임범위와 해체감리 업무 전반에 대한 건축사들의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해체전문기업 관계자와의 대담은 지난 광주 건물 붕괴사고를 되짚어 유사사고를 막고, 해체공사의 안정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해체공사 제안 단계에서 계약과 실제 공사, 그리고 감리에 이르는 올바른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그리고 안전한 해체공사를 위한 방안 등 요즘 말로 ‘뼈 때리는’ 솔직한 현장 얘기를 위주로 대담이 진행됐다.
▶권재희 건축사 최근 광주 건물 붕괴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해체공사 간 일련의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상호 간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해체공사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대안이 제시되길 희망합니다. 먼저 해체공사 실무자 입장에서 해체작업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해체공사 시장만이 갖는 특징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건축구조물 해체전문기업 A사 000 차장 계약과정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을 위한 해체공사는 조합과 해체업체와의 직접 계약이 많이 이뤄집니다. 때문에 조합측이 시공사에게 해체업체를 소개하는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현재 시평(시공능력평가)의 수위를 다투는 업체의 경우 연간 500억 원 이상을 기록하는 데, 공사비가 커지면 세금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자회사를 활용하고, 이렇게 ‘하도에 재하도’라는 이슈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또한 대규모 이주관리부터 해체 전반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업체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해체시장이 갖는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재희 건축사 해체공사 간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전문성이 부족한 소규모 업체의 난립, 공기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환경 등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광주 사고의 경우도 당초 계획대로 상층부부터 해체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중간층에서부터 작업이 이뤄졌다고 알려졌는데, 이 역시 공기단축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000 차장 건설공사 중 사고가 나면 근로자의 피해로 일단락되지만, 해체공사는 하등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 신중하고,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해체공사 사고 현장을 보다 보면 구조체를 건드리는 쉽게 말해 기둥을 건드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현장 용어로 다리를 꺾는다고 표현하는데 빠른 해체를 위해 벌어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광주의 경우, 부지가 넓으니까 폐기물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한 번에 무너뜨리자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단 쓰러뜨려놓으면 공사가 일단락됐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해체 관련 공사 표준품셈은 불과 5장뿐
건물별 해체공법 다양하지만 기준 전무
품질을 논할 수 없는 형편에서
발주자는 최저가업체 선정하는 구조
▶권재희 건축사 서울의 강남, 그리고 일산과 분당 등 건축물의 노후화로 인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시행할 곳은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해체작업의 수요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말이 되죠. 그런데 문제는 해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발주자가 최저가를 제시한 해체업체와 계약하는 풍토가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우려되는 사항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감리의 경우 표준품셈, 대가의 문제가 화두로 거론되고 있는 데, 해체업계에서는 표준품셈에 따른 일위대가나 관련한 문제가 없는지 궁금합니다.
▶000 차장 가격이라는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해체공사의 수요와 중요성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우리 회사의 경우 계약 전 장비는 무엇을 활용하고, 어떤 공법으로 해체할 것인지 간단한 팁을 제시합니다. 발주자가 ‘해체에 대한 지식이 없다’라는 가정 하에 가이드를 주는 것이지요.
사실 해체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은 국내에 별로 없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제안서를 분석하고 검토할 만한 발주자와 기관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B라는 건물을 해체할 때 어떤 공법을 적용할지에 대해 데이터와 통계보다는 현장소장의 경험이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대학에서 해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건설공사 표준품셈도 5장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콘크리트구조물 헐기, 철골재 철거, 석면건축자재 해체 등 꽤 단순합니다.
이 부분은 관심 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해체공법도 다양하고, 콘크리트 두께에 따라 칼날의 종류와 단가도 달라지는 데 이에 대한 기준이 전무하다는 것이니까요. 해체작업 자체가 기준이 없다 보니 품질을 논할 수 없는 형편이고, 그런 구도에서 발주자는 가장 싼 곳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조물을 철거할 때도 장비로 철거할 수 있고, 인력으로 철거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단가 차이가 많이 나지만 품셈에서는 한 줄로 처리되는 것이죠. 석면해체도 방법이 다양한데 획일화된 품셈 하나만 존재할 뿐입니다.
해체 시 5층 이상의 경우 도면 반드시 있어야
잭서포트 등 충분한 보강만 있으면 사고는 없을 것
폐기물 버리는 수준의 해체공사 인식이
오늘날 사고로 이어져
“해체공사 안전관리는 상주·비상주감리의 문제 아니다”
▶권재희 건축사 해체 감리 교육을 가보면 큰 빌딩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해체감리는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수요가 많다 보니 현장과의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도면도 부재해, 철근도면을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도면이 있어야 해체작업에 대한 계산이 이뤄지고, 장비사용 등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보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앞서의 논의를 연장해 사고 시 건축주의 처벌이 규정된다면 해체업체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해체작업의 첫 단추가 사실은 건축주와 해체업체의 계약이고, 그보다 앞서 건축주가 제대로 된 해체작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고 시 건축주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면 현재처럼 최저가 업체를 찾고, 그 업체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무리하게 빨리 철거하려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000 차장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포클레인 한 대로 작업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해체 감리 교육을 통해 배운 내용을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도면이 없어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5층 이상의 경우 도면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조체에 대한 접근, 해체공사의 안정성 확보를 비롯해 앞서 장비 한 대로 마무리되는 상황이 아닐 경우 장비를 어떻게 움직이고, 움직이면 안 되는지, 또 폐기물 반출을 위한 투하구는 어디로 설치할 것인지와 같은 최적의 동선을 찾는 데 도면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재희 건축사 광주 사고로 인해 건축물 해체 시 상주감리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실제 관련 사고 시에는 감리자가 우선 처벌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면 감리자만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실제 상주감리 현장의 업무 경험이 있으실 텐데, 상주감리제도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000 차장 해체감리가 생길 때 공무원의 면피를 위해 감리를 내세운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고요. 상주감리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C 현장에 상주감리를 한 달간 해야 하는데 이를 감리자가 수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업무대가를 떠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상주감리 제도를 만들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시스템대로라면 책임만 강조되는 독이 든 성배와 같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상주감리자가 상주하고 있는지 아닌지 누가 체크하느냐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현장소장의 권한이 큽니다. 경험이 자산인 해체공사 현장에서 2~30년 경험을 보유한 이들이다 보니 이들의 의견이나 방법에 힘이 실리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감리자와의 신경전도 꽤 빈번한 편입니다. 책임은 결국 감리자에게 가는데 감리자의 권한은 미진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해체 시 건물을 지어도 될 만큼의 잭서포트 보강을 한다면 사고가 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장비 한 대 불러다가 폐기물 버리는 수준으로 해체공사를 인식해왔고 때문에 오늘날의 사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주·비상주감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비상주를 해서 사고가 생기고 상주감리면 사고가 안 생기는 것이 아니죠. 해체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가 해체공사 관련된 업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격심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감리자의 경험에 비춰 단계별로 해체감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감리자 간의 업무 차등이 생길 수는 있지만, 해체 감리 업무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는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권재희 건축사 감리자와 해체업체 간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을 일단락하면서 정리하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기본과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해체 공사 간 강조되어야 할 부분들에 대한 교육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는데요. 교육 이외에도 앞서 잠깐 언급된 품셈이라든가, 매뉴얼 등도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조기 제도화되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000 차장 그렇습니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걸리면 되겠지만 근로자의 의식개선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의식개선을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고요. 현장소장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할 때마다 “현장에서 서두르지 마라”, “천천히 해도 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했던 것이 더 높은 효율을 보장했습니다. 반대로 현장 책임자가 공사를 서두르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해체공사는 신축공사와 다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해체공사에 대한 별도의 매뉴얼이 없다 보니 시공사 안전팀이 신축공사 안전기준을 해체현장에 적용하려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찰이 생기고, 현장의 위험성이 커지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범적인 해체계획서, 체크리스트, 매뉴얼 등 해체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기준과 원칙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론화될 수 있길 바랍니다. 아울러 재개발·재건축 못지않게 이뤄지고 있는 리모델링(쇼핑몰 등) 공사 감리 부재 문제 역시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될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상주감리 등 사고 발생 후 이어지고 있는 제도개선 과정들이 업계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노력이 선행되고 난 후 전개되길 희망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대담 권재희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