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옥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젊은 사람이 좋은 일한다는 치사가 다소 쑥스럽기도 하고 때론 자랑스럽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수의 젊은 대학생들이 한옥에 관심을 보이고 또 한옥 관련한 인터뷰 요청이 종종 나에게도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한옥이 대세이긴 한가보다. 대체 한옥의 어떤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한옥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까?

한옥에 대해서 흔히들 추억으로 말하는 것에는 나무가 주는 편안함, 탁 트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호흡 등 흔히 말하는 친환경, 웰빙이라는 호감도 있고, 추운 겨울 창호지 문틈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 적은 수납공간으로 다소 어수선함에 대한 불평도 있다.

물론 한옥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여러 이유로 한옥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에는 감상적인 면도 있을 수 있고 우리의 것을 챙기자는 다소 애국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선조들의 슬기나 과학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 공감대를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나는 한옥의 가치가 과학성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옥의 과학은 에디슨의 발명품과 같은 혁신적 과학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온돌과 같은 한옥의 과학성은 천년도 훨씬 전부터 아주 오래 세월을 꾸준히 진화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한옥의 가치는 건축을 철학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瀟灑園)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정원이자 건축 중 하나이다. 소쇄원은 그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일본 교토의 정원이나 중국 소주의 정원들을 보고나면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같은 동양의 정원과 비교해도 소쇄원은 규모도 턱없이 작고 게다가 정성스럽게 매만진 흔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것에 바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을 다른 가치에서 찾고 싶다. 바로 소쇄원 48영(四十八影)이다. 한 눈에 다 들어올 것만 같은 작은 소쇄원에 무려 48가지의 경치를 만들고 각각을 설명하였다. 크기가 작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에게 있고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었다. 48영 가운데 백미는 수계산보(脩階散步) 라고 생각한다. 수계산보(脩階散步)는 계단을 따라 걷는 내가 바로 경치라는 것이고, 인간사 모든 번뇌를 계단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멋진 정원에서조차 가만히 있자면 세상사 상념들이 우후죽순 모두 일어나지만 울퉁불퉁해서 불편한 계단을 오를 때는 오르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어느덧 번뇌를 잊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세상 어느 곳의 비탈에도 놓여 있을 계단에 이렇게 멋진 해석이 또 가능할까?

나에게는 진정 충격이었다. 계단의 바닥과 춤의 관계는 ‘27 + 18 = 45’이고, 계단의 한 단 한 단은 똑같게 만들어야 건축 이용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건축교육을 받은 나로서 그랬다.

우리 조상들이 한옥을 삶의 물리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철학적 도구로서 해석한 증거들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서울 숭례문의 홍예 너비가 16척(5m)인 것에 이유가 그렇고, 영양 서석지(瑞石池) 연못의 가끔 잠기는 작은 돌을 ‘탁영반(濯纓盤)’이라고 이름 지은 유래가 분명하며, 10년 동안의 시골 생활을 열심히 한 끝에 마련하는 초가를 3간으로 계획하는 당위성들이 그러하다.

한국의 현대 건축이 아직 주변에서만 맴돈 듯 한 이유에 대해 나는 혼자 생각해 본다. 높이도 다르고 바닥면도 울퉁불퉁한 돌계단을 번뇌의 망각처로 해석했던 ‘수계산보(脩階散步)’의 후손들이 모더니즘 건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더불어 나는 희망한다. 한옥에 숨어있는 가치를 찾아내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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