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모 건설 전문지는 ‘건축 설계․시공 겸업제한 시공 비효율성, 설계 기술발전 저해’라는 헤드라인으로 시공업체의 설계겸업제한이 ‘건축 설계업과 시공업의 동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분노가 일고, 거대 자본 앞에 떨고 있는 구멍가게 주인의 심정이 된다.
설계겸업제한 완화 주장을 살펴보면 마치 건설사에 우수한 설계 인력과 능력이 있는데 규제에 묶여 설계를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행법 상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지 않고도 ▲엔지니어링사업자 소속 건축사가 수행하는 특수건축물과 ▲건설업자 소속 건축사가 수행하는 건설업자 또는 계열회사의 분양목적 외의 업무시설에 대해 설계가 가능하다. 또한 건축사자격이 없어도 건축사와 공동설립으로 건축사 20명이상을 채용하는 경우 법인건축사사무소 개설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수 증가와 고용부담 등을 이유로 대형 건설업체들은 건축사사무소 설립을 꺼려하고 손쉽게 자회사 또는 하도급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설 수주에 비하면 ‘벼룩의 간’만도 못한 것이 설계시장이다. 건설사가 설계겸업에 눈을 돌리는 시기를 살펴보면 IMF라던가 금융위기와 같이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졌던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대형 건설사가 설계 시장을 넘보는 것은 사자가 먹을 것이 부족해지니 개미의 밥을 탐내는 격이다. 진정 설계업의 발전을 바란다면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일단락 된 사안을 자구 끄집어내 겸업의 완전 허용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대형 법인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해 세계 설계시장을 목표로 도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설계, 시공, 감리가 지배, 유착관계가 아닌, 건강한 협력과 견제 기능 아래서 지어져야 건축물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 설계와 시공이 대기업의 지배 아래 경제논리로만 이루어진다면 국민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인 것인가?
건설사의 설계겸업이 가능한 배경에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도 한 몫하고 있다. 정부는 2008년 대통령자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발족과 작년 6월 시행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정’ 등으로 건축설계 분야 육성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법으로 무자격자‧건설업체가 건축설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축사와 같은 변호사, 약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타 전문자격사도 무자격자의 자격사법인설립에 대한 제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분야별 전문성을 정부가 인정하고 전문자격자들에게 그 분야를 일임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건설사의 설계겸업 완전 허용 요구는 재론의 가치도 없는 일임이 분명해진다.
무의미한 논쟁으로 건축계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