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사는 건축주를 만난다. 신축을 하려고 건축사에게 찾아오는 건축주들은 서민보다는 더 낢은 삶을 영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설계를 부탁할 때 건축주들은 더 낳은 삶의 공간이나 부의 증가를 꿈꾸면서 더 행복한 꿈을 건축사와 함께 하곤 한다. 그 점 에선 얼마나 행복한 직업인지 모른다. 하지만 건축사가 하는 일이 신축만 있던가. 그 나머지 일에서 일어 난 이야기이다.
화재로 소실 되어버린 집 무너져 가는 집 조금씩 자기 집의 영역을 넓히다 관공서에 적발되어서 오는 사람 물론 이일은 그 사람의 욕심으로 볼 수 있고 해선 안 되는 일을 해서 문제가 되어버린 것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 조금만 넓히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곤 한다.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져 들곤 한다. 열심히 법 적용을 해서 법에 맞추어 줄 수 있을 때 난 신축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비가 마니 내리고 태풍이 불거나 겨울이 되어서 화재의 위험이 높아져 가게 되는 계절에는 구 재난 안전위원으로 관공서의 위탁을 받아 재난 위험 건축물들의 조사를 나가곤 한다. 여름의 비가 오는 날을 일부러 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비가 오는 날 점검을 가게 되곤 한다. 금세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안에는 집 내부 계단으로 개천과 같이 물줄기가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고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들은 간신히 비를 피하는 공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언제 작동을 한 건지 모르는 보일러들은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히고 어떤 일로 살던 집에서 나가버린 주인 없는 방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관공서에서 폐쇄(문을 봉쇄한다)해버려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곤 있다. 그 옆에 그리고 이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에건 건축법에서 적용한 어느 것 들도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곤 있다. 지상 3층짜리 이 건물 안에 140명이 주소지를 두고 있다고 한다. 방 하나는 1m*2m정도의 공간이었다. 재난 안전 점검을 위해 나가면 그 곳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우릴 내쫓으러 왔냐며 겁에 질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무엇(내가 생각할 땐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보여 진다)을 빼앗으러 왔냐며 소리 지르고 협박 하는 사람들 사람 살게 환경을 고쳐 달라며 손을 붙잡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 공간에 무서워서 냄새나서 공무원의 뒤에 꼭 붙어 조심스럽게 다니곤 했다.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어느 공간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후레쉬를 비춰가며 조사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그 들을 위해서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이 건물은 위험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해 주십시오. 하지만 나도 안다 그 들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라고 어찌 좋은 환경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위험을 보면서도 나는 그냥 지나치고 보고서를 쓰는 것 외에는 다음해에는 이곳이 철거 되어 없어 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떤 곳은 다음해에는 철거 되어 지고 없었다. 그곳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 가셔서 철거 되었다곤 한다. 안심해야 하나? 그러면서 이제 그 집은 내머리에서 떠났으니 행복해 해야 하나? 어느 곳이 재개발 사업에 들어갔다고 하면 가장 먼저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한다. 이런 집들은 하나 하나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어디로 갔을까?
겨울 화재 방지를 위해 재난 점검을 나갔다. 구내에 있는 고시원 일체 점검이었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지금 문제시되고 있는 고시원, 도시형 생활주택 들은 천국이다. 예전 여인숙을 개조해서 살고 있는 고시원, 공장 건물에 꼬불꼬불 미로를 통과해 자기 방을 찾아 가야 하는 쪽방들 냄새가 나서 숨을 쉴 수도 빛도 없는 거기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 행복을 찾았다. 요즘 일이 없다고 투덜거릴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남의 삶을 보면서 비교 가치에 웃고 있는 내가 참 불쌍했다.
요즘 토론에 도시형 생활주택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주차공간도 없고 면적이 너무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사람들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방이 3개였다. 세대수도 3세대 였다. 다른 가족들이 모여 사는 아이들만 해도 일곱이나 되었었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셨기에 옆방 아주머니가 우리들을 키우 다 시피 하셨다. 그건 옛날이야기라고 얘기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살수 밖에 없는 사람들 수 없게 많음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 우리세대들은 더 많은 위험에 처하여 있다 통계로 보면 노후 자금이 800만원이신 분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분들이 넓은 집을 가질 수 있으며 자동차가 꼭 있으셔야 하는 분들인가? 건축사에게 의뢰조차 할 수없는 많은 사람들 쪽방에서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고 도시형 생활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들이 건축사에게 내 집을 의뢰 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 갈 수 있는 공간도 필요 한 것이다.
우리는 도시형 생활주택이 슬럼화를 가져 온다고 걱정할게 아니라 그곳에서 예전 같이 서로를 도와 갈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활성화 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머리를 짜 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공간들이 노후의 외로움도 보육이 문제도 해결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임대 주택이 다가구 주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사회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점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다함께 사는 사회이다. 우리 건축사들도 서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있는 직업으로 서민에게 인식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