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건축사
조성욱 건축사

도시의 이미지는 건축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어떤 도시는 유명 건축사의 작품 하나로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의 일반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표정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대한민국=아파트공화국’이라는 별명은 오래전부터 국내외로 알려진 우리 도시의 이미지이다. 건설사 주도로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은 서울이나 대전, 대구, 부산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모두 똑같이 생겼다. 각기 특색 있는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들을 천편일률적인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산과 들을 가리며 색깔을 흐려놓고 있다.

국가에서는 주택 물량을 늘리겠다는 소리만 하지 품질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택 공급의 양적 팽창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좀 멋진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요즘은 아파트 단지들을 고급화하려는 시도로 서울 한강변이나 강남 일대에 해외 건축사들을 설계에 참여시키고 고급 자재들을 사용한 최고급 아파트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몇 십억을 호가하는 이런 소수의 아파트들이 도시의 얼굴을 대변하진 못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공동주거들이 도시의 얼굴이 된다. 우리가 유럽이나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 여행을 가면 아름다운 도시경관에 감동을 받는다. 그런 이미지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이 공동주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도 그들과 같은 멋진 공동주거를 만들어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이룰 것인가?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기획부터 설계하는 과정을 거의 건설사나 시행사가 주도한다. 건축의 전문가인 건축사가 설계의 업무를 진행하지만, 계획을 하기 보다는 도면 그리고 인허가 하는 일에 그친다. 단지 배치에서부터 건물의 외관, 내부 공간까지 건축사가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여러 분야로 쪼개져서 계획되기에 건축사의 의도란 애당초 있기가 힘들다. 그저 수익성에 맞춰진 배치에 따라 건물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다.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건축사가 마치 향후에 불법이라도 조장하려는 듯 색안경을 끼고 도면을 들여다본다. 건축사의 입장에서는 허가에서부터 준공에 이르는 과정이 마치 죄인이 해명하는 과정과도 같다.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좋은 건축은 기능과 미적인 완성도를 두루 다 갖추어야 한다. 수익성만을 보고 지어진 건물은 좋은 건축이 될 수 없다. 좋은 건축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합심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야 좋은 건축이 나올 수 있고 그 기획의 중심에는 건축사가 있어야 한다. 유럽의 국가들은 도시의 여러 정책들을 결정하는데 건축사가 중심에 있다고 한다.
 

영국의 공동주택 4 (사진=조성욱 건축사)
영국의 공동주택 (사진=조성욱 건축사)

공동주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자기 위치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 시행사는 전반적인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면서 지속적으로 건축사와 협의를, 건축사는 쾌적하고 멋진 공간이 나오도록 각고의 노력을, 건설사는 효율적인 공사가 되도록 건축사와 끝없는 디테일 협의를, 공무원은 건축사를 신뢰하며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을 모을 때 멋진 공동주거는 탄생할 수 있으며 비로소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도 탄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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