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의 건축사는 누가 보아도 멋있고 잘났다. 꽃미남 탤런트 이민호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러 이동하던 중에 모형이 부서지는 사건은 연일 밤새워가며 현상설계를 마감했던 건축사로서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들은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있다. 건축사는 이른바 퓨전한옥인 ‘상고재’라는 멋진 집에서 살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공사현장의 밀린 인건비까지 대신 지급하는 인간미를 발휘하고 있다. 여자 친구는 손예진 정도... 자금의 압박, 경쟁사의 로비, 학연과 지연 등을 물리치고 결국 성공과 사랑을 쟁취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97년도 모사무실의 현상팀에 있을 때, 월요일 아침에 일주일치 옷가방을 싸들고 출근해서 토요일에 퇴근하며 지낸 적도 있다. 지금 이렇게 하라면 다들 사표를 쓸게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경제위기로 국내 건축계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는 국내경기와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 왜냐? 항상 어려우니까. 항상 어려우니 뭐 새로울 것도 없다. 그만 두고 다른 것을 할까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고 실제로 전업한 친구들도 한 둘 있다. 이럴 어려웠던 그날의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1997년, 입사 3년차에 IMF를 맞이하였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경기가 후퇴한 적이 없었으니 IMF가 무엇인지 몰랐다. 방송에서는 연일 떠들어댔지만 현상설계, Turn-key 준비에 밤새느라 그런 것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3개월 후 정리해고 되었고, 이제는 다른 일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또 어렵게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했다.
1999년, 5년차에 건축사시험을 봤다. 시절은 암울했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았으니 무우라도 잘라야 할 것 같았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김밥 장사를 하더라도 건축사 자격증은 따서 걸어놓고 싶었다. 그때는 IMF시기라서 회사에 일이 없었을 텐데도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매일야근을 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보고 발표일까지 약 한 달 정도 걸렸는데 기다리는 한 달 내내 밤마다 건축사시험 보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대가 커서일까? 발표되는 날 너무 떨려서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는데 9시 넘어서 회사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손과장님 합격됐는데 왜 출근안하세요!” 후배의 전화에 환호를 질렸다. 그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그날의 아침을 떠올린다. 그 때도 힘들었지만,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서 지금이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보다, 경험(존재)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설계일로 밤을 새고 느끼는 피곤함에서 얻는 소유는 크기 않으나 행복한 경험을 준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느끼는 창조의 성취감과 어려운 여건(건축주의 금전지상주의, 관공서의 무사안일주의, 시공자의 시공편의주의) 가운데 순수함을 지켜가는 경험은 다른 어떤 작업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나는 폼나고 편하게 살려고 건축사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다. 울창한 여름이 있으면 낙엽을 스스로 잘라야하는 겨울도 온다. 그런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다시 새싹을 피우는 봄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한다.
어려워도 난 건축이 좋고 설계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