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1392년부터 1910년 까지 약 500년은 조선왕조시대였다.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외우기도 힘들었던 무려 27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으니 기나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조선의 역사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건축된 건물이 있다. 바로 조선의 개국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대성당)이다. 1386년 ‘안토니오 다 살루초’ 대주교에 의해 건설이 시작된 때부터 1805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탈리아 국왕 즉위식을 거쳐 1965년 마지막 출입구가 완성되기까지, 조선의 역사보다 더 긴 5백 몇 십 년의 공사기간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우 느리다.

날씨 좋은 날이면 과천에서 양재천변을 걸어 양재동 스튜디오까지 출근을 한다. 천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보는 온갖 꽃들과 청둥오리, 백로, 커다란 물고기들은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 된다.
그 길 중간에 지나게 되는 양재천가 우면동에서는 요즘 보금자리주택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며칠이 다르게 솟아올라가는 아파트 건물을 보노라면 가끔은 인간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몇 년 사이에 개천이 복원되고 1∼2년 만에 커다란 타운이 생겨난다. 한국 사람들은 무척 빠른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한 이탈리아 친구에게 한국의 아파트 재건축에 대해서 설명할 일이 있었다. 문제는 이 친구가 도무지 한국의 재건축을 이해 못하는 것이었다. 살다가 불편하면 하나씩 개조하고, 또 좁으면 조금씩 늘려 고치면 되지 왜 모두 한꺼번에 허물고 다시 짓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두 가지로 이해시킬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급하게 졸속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너희들 건물처럼 보존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더 크게 지어 값을 올리려는 사람들의 ‘경제논리’라고. 왠지 부끄러웠었다.

어쩌면 느린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시계가 좀 느리게 간다고 해서 그것이 개인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은 요즘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건물, 밀라노의 상징인 흰색 두오모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가고 있는 서울의 회색 아파트들을 보며 생각한다.
건축의 의미, 건축과 인간의 관계, 건축과 자연 그리고 한 세대는 고사하고 몇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가시적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이겠다는 우리의 조급함에 대해서.

어찌되었든 둘 다 건축은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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