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사회성과 공공성 구현’을 주요 심사 요소로 평가
3월 17일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마흔 세 번째 수상자가 발표됐다. 올해 수상자는, 프랑스의 공공건축사 안네 라카톤(Anne Lacaton)과 장 필리프 바살(Jean-Philippe Vassal)이다. 두 건축사는 주로 공공주택이나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해 건축물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유산으로 남게 했다.
심사위원단은 “두 건축사가 시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회적 건축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 상을 수여했다”며 “두 작가는 생태적 위기 상황을 맞은 지금 시대 상황에 대응해 모더니즘의 유산을 새롭게 갱신하는 건축적 접근법을 정의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 선정에 있어 건축물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건축의 사회성과 공공성 구현을 주요 평가요소로 삼는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모든 국가는 도시재생과 재개발, 1인 가구 증가 등 과제 등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상자 라카톤과 바살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기존 거주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추가로 건축이 가능한 대지를 세심하게 물색하는 ‘질적 조밀화’, 재정 낭비와 주거인 수 감소를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철거 후 재건축’을 되도록 하지 않음, 그리고 공간 확보를 위한 ‘더 높이 짓기’를 제시했다.
또 리모델링 당시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계속 그곳에서 주거를 유지할 수 있게 했으며, 건물주와의 협의를 통해 같은 공간을 두 배로 증축한 뒤에도 임대료를 올리지 않도록 합의했다.
이 건축사 듀오는 건축물 자체뿐 아니라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과 건축물의 공공성’에 방점을 두고 작업에 임했고 프리츠커상 주최 측은 이런 점을 높이 사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과거 프리츠커상 수상자 명단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건물을 만든 유명 건축사를 주로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 인물은 링컨센터와 에이티앤티(AT&T) 본사 등 현대 뉴욕의 유명 건축물을 디자인한 필립 존슨(Philip Johnson),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중국계 미국인 건축사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조르주 퐁피두 센터의 공동 설계자 렌조 피아노(Renzo Piano)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등이다.
이렇게 소위 ‘스타 건축사’에 주목하던 프리츠커상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특성에 맞춰 환경, 빈곤, 재난 대응 등 사회적 가치를 담아온 건축사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오면서부터다.
지난 2011년 프리츠커 상 심사위원들은 포르투갈의 건축사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소투 드 모라는 건축적 전통을 전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는 항상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다”고 평가했다.
그 이듬해에는 중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물 디자인에 적용한 왕슈(王澍·Wang Shu)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으며 2014년에는 일본과 아프리카, 인도 등지의 재난 및 난민 문제를 고민하며 저렴하고 건축이 용이한 종이를 활용해 임시 거주 공간들을 설계한 일본 건축사 반 시게루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6년에는 칠레 출신의 사회참여 건축사로 자신의 나라 북부 이키케라는 곳에서 ‘빈민을 위한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아라베나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각 세대에 돌아가는 정부의 건축지원금이 부족하자 절반만 완성된 주택을 지은 뒤 나머지 절반은 미래 돈을 더 벌면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
“진정한 설계란 스스로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라는 말을 남긴 아라베나는 올해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18년 인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리츠커상을 받은 발크리슈나 도시(Balkrishna Doshi)는 도시 서민들을 위한 공동주택 설계에 한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1955년 건축사사무소를 연 이래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 만한 집을 짓는 일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열정은 1987년 8만 명이 살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아라냐 공동주택’(Aranya Low Cost Housing, 인도르)으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도 프리츠커상 주최 측은 출신지 아일랜드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페루, 이탈리아 등 유럽과 남미 등에서 학교와 관공서 등의 공공건축물 설계에 힘을 쏟은 여성 건축사 이본 파렐(Yvonne Farrell)과 셸리 맥나마라(Shelley McNamara)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