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등장이후, 그 편리함과 경제성에 매료되어 너나할 것 없이 자기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 칸을 얻는 것이 현시대의 보편적 삶의 목표가 되었다. 이제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으면 평범한 삶이 아닌 것으로 인식될 정도다. 유치원에가보면 아이들이 그린 자기 집이 한쪽벽면에 걸려 있는데 유심히 보면 가장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들마저 집에 대한 생각은 네모반듯하고 높게 올라간 그림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아파트생활이 앞으로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우리가족이 살 집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기보다 주변에 무엇이 생길 것인지에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몸은 손가락하나 까딱일 필요없이 편안해져도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부동산시세에 가슴 졸이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다 만들어진 건물에 몸을 맞춰 살아가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다보니 건축작업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모두의 관심이 경제적인 것에만 집중되다보니 자연스레 건축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 같다.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견해로 보다나은 삶을 위해 꾸준한 제안과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건축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돈가진 사람이 말한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더라. 그것이 비록 좋은 방향이 아닐지라도 그에 반하는 제안을 하게 되면 일을 놓칠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소극적으로 대처할 때가 많아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간 또한 새로운 것보다 이전의 것을 답습할 때가 많아지고, 사람들은 ‘집은 다 거기서 거기니 주변 인프라를 보고 집을 사야한다.’는 상황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나는 작년부터 ‘땅콩집’이라는 단독주택을 설계하고 있다. 이 땅콩집은 외국에서 오래전부터 ‘듀플렉스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대중화된 주거양식이다. 돈이 넉넉지 않았던 나와 내 친구가 아파트를 탈출하기위해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 방식을 찾았고 작년에 준공하여 지금까지 두식구가 사이좋게 살고 있다. 신기술이라 할 만한 것이 없던 이 주거방식이 요즘 많은 분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약간 어리둥절하다. 누군가 사람들이 왜그리 관심을 보이냐고 물어보면 단지 기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나보다 라고 할 뿐이다.

근래 많은 관심만큼 실제로 많은 건축주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이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참 재밌는 부분이 많다. 일단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 아이를 키우는 30∼40대 부모라는 것과 돈이 넉넉지 않다는 것, 그리고 현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상담을 하다보면 마치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건축주와 건축사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다보니 상담시간동안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 웃음은 건축주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집이 생긴다는 기쁨과 떨림일 것이고, 건축사에게는 건축사로서의 분명한 역할을 통해 한 가정에 보다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보람일 것이다. 건축주의 소소한 일상과 그에 따른 요구사항을 듣다보면 학창시절 꿈꾸던 건축사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마음이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좋은 건축주를 통해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되찾은 것이다.

나는 젊어진 마음으로 그들에게 어울리는 제안을 하고 그들은 내말에 귀기울여 들어주며 자신의 의견을 보태준다. 이런 설계 과정은 나로 하여금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지금 난 예전에 느꼈던 악순환과 비교되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내가 가진 능력이 특별나서가 아니다. 아마 우리가 세속적인 것에 너무 치우쳐 본의 아니게 건축 본연의 목적을 외면하면서 놓쳐버린 것을 사람들이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크고 화려한 것을 쫓기보다 작고 수수한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재밌게, 그리고 즐겁게 건축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는 자신을 도와줄 좋은 건축사를 만나고 싶어하는 순수한 건축주들이 많이 있다. 경기가 어려운 지금이, 눈을 돌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건축주들에게 한발 나아갈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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