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건축사
이경구 건축사

2021년 4월이 되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지 만으로 7년이 된다. 건축사로서 작업을 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생계를 위해 달려온 노력의 시간에 대한 대가로 아직까지 건축사의 업을 무사히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처음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내일을 보면 많은 후배 건축사의 낯설고 힘든 시작과 미래의 치열한 노고가 그려진다. 건축사로 밥을 먹고 사는 일은 참으로 수고로운 일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설계 대가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수년째 응답 없이 우리 건축사들만 홀로 외치고 있고 공모전은 과열된 경쟁으로 이미 기회의 균등과 심사과정의 공정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나마 아주 소심하게 우리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단합된 목소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지금 그리고 미래의 건축사들이 어떻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참 퍽퍽하고 메마르다. 먹고사는 문제는 늘 있지만  그런 거 말고 그 뜨겁던 하루를 싸워내고 나의 아버지가 마시던 쌉쌀하고 시원한 탁주 한 잔처럼 힘들고 어려운 삶 중간에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없을까?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중단되었지만 내가 속한 지역건축사회에서 재능기부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마가 시작되는 초여름, 주거환경이 어려운 분들에게 주방개선사업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회원들이 모은 성금으로 재료와 공사업체를 선정하여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덥고 습한 공간에서 잡일과 간단한 도배 일로 땀을 흘린 적이 있다. 물론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유지하시는 분들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지역회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 비탈진 산등성이에 새끼줄로 나누어진 20평 남짓 땅에 강제 이주되어 원하지 않는 삶이 시작되고 열악한 도시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지역이 속해있다. 필자는 지역회에 가입하여 관할 관청의 요청으로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리모델링 지원사업, 노후건축물 안전점검 조사, 해빙기 공사현장점검 자원봉사, 화재안전성능 보강 관련 조사업무 등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통해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곳을 찾아 고개를 오르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아직도 이렇게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다.

주방개선 공사 1호 집이 완성되고 구청 관계자들과 참여 건축사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주인 할머니의 흘리시는 눈물에 건축사로서 보낸 지난 7년간의 시간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건축물을 설계 해왔지만 그날 나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설계를 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희망을 설계를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개인적인 보람과 건축사회에 대한 자부심과 동료애,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만족을 얻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며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연 물질적인 목표가 채워지면, 먹고사는 일이 좀 나아지면 만족할 수 있을까? 그 갈증을 채우고 채워도 또다시 금방 목마르게 될 거라는 것을 안다. 더 목말라할 것이다. 그 이후로 필자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목표도 생겼다. 누군가에게 해줄 희망의 설계에 대해서 말이다. 이미 지난 11월 지역 건축사님들과 관청에서 요청한 점검 용역을 수행하고 용역비를 모아 올 1월 초에 500만 원을 만들어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식아동을 위해 시에 전달하였다.

참여한 건축사님들 모두 넉넉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동참하였다. 그렇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우리 건축사들이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설계를 하자.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고 큰 시야로 멀리 보자. 국민의 희망된 삶을 위해 진정성 있게 봉사하는 모습이 쌓이면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건축사로 기억되지 않을까? 국민이 존경하는 우리의 가치는 스스로 떠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국민의 삶을 위한 희망을 설계하자. ‘건축사는 사회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한다’는 윤리선언서의 첫 구절을 오늘 문득 다시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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