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설 전 ‘주택 공급 확대’ 방안으로 일조기준 개선안 검토
현행 일조권 기준, 구조적으로 계단형 베란다 만들어
거주·수납공간 불법 확장 유도…화재안전·방수·단열에도 취약
대한건축사협회 “목적했던 실질적인 정책 효과 기대 어려워…공공성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조 기준 개선 바람직”

대한건축사협회가 제안한 일조기준 개선안(‘일조기준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 ’20.1.30)
대한건축사협회가 제안한 일조기준 개선안(‘일조기준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 ’20.1.30)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주택 공급과 관련한 특단의 대책을 고심하는 가운데 이를 위한 방안으로 건축법에 따른 ‘일조권 사선제한' 규제완화를 검토하며 내부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특단의 공급 확대를 통해 주택시장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설 전에 내놓을 예정인 공급 대책에 대해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구체적 공급 대책으로는 “공공재개발, 역세권 개발, 신규 택지의 과감한 개발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에 따르면 국토부는 설 이전에 발표할 주택 공급대책의 일환으로 공공재개발, 역세권 개발에 더해 저층주거지역 고밀도 개발 방안으로서 일조권 관련 규제완화 카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지난 1월 19일 역세권 고밀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으로 주거지역 용적률을 최대 700%까지 완화하는 내용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일조권 관련 법령은 1971년 건축법 하위인 건축법 시행령에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행 건축법은 용도지역 중 준주거지역을 제외한 전용주거지역·일반주거지역 내 모든 건축물에 대하여 일조 제한을 적용한다. 이는 해가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는 건축물을 일정 간격을 띄워 건축하여 일조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정북 쪽에서 건축물을 일정 거리를 띄워 건축하게 하는 것으로, 건축법 시행령 제86조(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에 따라 건축물에서 높이 9미터 이하인 부분은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1.5미터 이상, 높이 9미터 초과 부분은 건축물 각 부분 높이의 2분의 1 이상 후퇴해 건축해야 한다.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 내 다가구·다세대주택의 경우 저층부는 반듯이 올라가는데 상층부는 비스듬히 올라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일조권 사선 제한(인근 건물의 일조권 확보를 위한 높이 제한) 규제 때문이다.

도입 후 무려 50년간 적용된 건축규제인 ‘일조권 사선제한’은 건물이 다닥다닥 들어설 경우 발생되는 일조·채광·통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법건축물을 양산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일조권 관련 법령에 따라 건축될 경우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계단형 베란다 때문인데, 통상 일조권 사선제한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계단식 공간이 확장 거실 등으로 불법 사용되고 있다. 이런 베란다 확장은 위법건축물 유형 중 대표적인 무단증축 사례로서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주거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다. 도심 주거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위법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무단증축 행위 사례(자료=울산광역시 남구청)
무단증축 행위 사례(자료=울산광역시 남구청)

실제 대한건축사협회가 지난해 1월 개최한 ‘일조기준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위법건축물 적발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무단증축 적발 건수는 한 해에만 무려 7만 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수·단열 문제와 더불어 자칫 화재라도 일어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위법행위에 대해 지자체가 부과하는 이행강제금이 있지만, 불법을 저지름으로써 얻는 이득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

서울특별시 위법건축물 현황
서울특별시 위법건축물 현황

앞서 국토부는 일조권 사선제한과 함께 대표적인 건축물의 높이제한 규제인 ‘도로사선제한(건물 각 부분의 높이를 도로 반대쪽 경계선까지 거리의 1.5배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2015년 폐지한 바 있다. 이 규정 또한 도심 도로변에 계단형·대각선 모양의 기형적인 건축물 그리고 위법건축물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도시 내 개방감과 시야·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준공 후 빈 공간에 발코니를 설치하는 등의 불법행위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축·도시·경관 등과 관련된 타 법령의 규제가 다양하게 도입되며 사선제한을 하지 않고도 건축물의 개방감, 경관 확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지면서 폐지 수순을 밟았다.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법 시행령 건축물 높이 기준을 18미터로 상향’, ‘기준 높이 이하 부분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2미터 이상 띄우는 방안’ 제시

대한건축사협회는 일조기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일조권 관련 법령이 사실상 위법건축물 양산을 유도해 건축 안전 측면에 문제가 있고, 가로환경 슬럼화를 부추겨 도시 미관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지안의 공지 부족으로 쓸모없는 공지를 만들어 토지 이용 비효율을 초래한다. 더불어 일조권을 위한 규제이지만 당사자가 일조권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입증해 원상회복 또는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협회는 작년 1월 ‘일조기준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에서 대안으로 건폐율·용적률은 현행을 유지하되, 시행령의 건축물 높이 기준을 18미터로 상향하는 대신 기준 높이 이하 부분을 인접 대지경계선으로부터 2미터 이상 띄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제안한 일조권 법령 개정안
대한건축사협회가 제안한 일조권 법령 개정안

대한건축사협회 건축법제국은 “현행 일조기준이 목적했던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얻지 못하고, 사실상 불법 증축을 유도하는 폐단을 안고 있으므로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층주거지 복지를 위한다면 주차장 설치 대신 공용주차장 설치를 위한 비용 분담제 제도개선과 더불어 부설주차장 설치 의무 완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관계자도 “일조권 사선 제한은 계획단계에서 남측 코어 발생 등 설계의 불합리함 뿐만 아니라 위법 건축물을 양산하고 있다”며 “잘못된 건축의 정상화 방안으로서 채광, 환기, 통풍을 감안하여 현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도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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