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결국, 문고리를 붙든 채 문 안도, 문 바깥도 아닌 곳에서 마냥 서성거리는 짓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안전하게 살아, 문을 열려고 하지 않으면 아예 문이란 것이 없는 곳에 살아.” ▲ 김인숙의 소설집 ‘유리구두’ 속의 단편 ‘문’의 한 문장이다. 소음 때문에 못살겠다는 편집광적인 아래층 노인에 의해 가족이 모두 노이로제에 걸려 신경질적으로 변해가자, 참다못한 가장의 한 마디에 이젠 벽치기까지 계속되어 결국 이사를 하게 되는 이야기로, 공동주택에 사는 현대인의 소음에 대한 애환을 그리고 있다. ▲ 사람 사는 곳치고 문 없는 곳이 정말 있을까? 없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문고리 없는 곳은 있다. 한적한 시골의 싸리나무나 볏짚으로 만든 사립문은 닫아놓으면 주인이 없다는 표시이고, 열어놓으면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이런 집도 방문에는 문고리가 있게 마련이다. ▲ 문고리의 역할은 문을 여닫는 기능과 잠그는 기능이 기본이지만 그 외에 노크 기능이 있다. 여염집의 대문은 문고리와 걸쇠로 되어 있지만 대가 집은 문고리만 두 개이고 걸쇠는 없다. 항상 하인들이 있기에 집을 비울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잠금 기능이 없는 경우, 문고리는 위엄 있는 장식이며 밤늦게 안으로 잠근 문을 열기위해 문고리를 잡고 배목판을 두드렸던 통신수단이기도 했다. ▲ 문고리 배목판은 철이나 놋쇠로 만드는데, 그 형상과 크기가 국화문 등 작은 크기의 여염집과 달리, 치우천왕, 귀문, 도깨비문 등 무서운 형태로 도둑과 질병의 근접을 막는 부적과 같은 양식을 갖고 있다. 물론 염문이나 누각의 모습을 한 정감어린 장식도 있고, 서양에서는 사자머리 장식으로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 프라하 성 언덕에 높이 솟은 성 비타 성당은 10세기부터 지어져 1929년에 완성한 고딕양식으로 첨탑높이가 124m에 달한다. 이 성당에는 21개의 소 예배실이 있는데,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3개국의 왕으로서 광대한 동유럽을 다스렸던 바츨라프 2세는 이곳에서 이복동생들에 의해 저격을 당해 죽는다. 지금 그곳에는 죽음의 순간에 부여잡고 있었다던 사자머리 배목판 문고리가 남아 있다. ▲ 요즈음 아파트의 문고리는 원형에서 레버형으로 모두 바뀌었다. 원래 레버형은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오토매틱 변속기 자동차와 같이 특수용도에서 일반화가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가끔 서두르다가 이 레버형 손잡이에 윗도리가 걸려 곤혹을 당하곤 한다. 이것이 어디 나 한사람뿐일까. 이런 것은 유행이나 일괄이 아니고, 사용자에게 장단점을 알리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하찮은 것일지라도 건축사의 세심한 시방과 배려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