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대한건축사협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50년’이라는 역사와 연륜에 걸맞게 협회에는 급격한 변화와 좌절과 찬란한 도약의 순간들이 있었다. 건축사들은 우리나라의 변화와 위기, 성장에 발맞추어 쾌적하고 아름다운 국민의 일터와 주거공간, 문화와 쇼핑공간, 공공시설물을 만드는 최일선에 서있었으며, 대한건축사협회는 모든 회원들의 힘을 모으고 뒷받침하면서 건축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써왔다.

50년사의 페이지를 넘기니 힘들지만 보람 있었던 지나간 세월이 그리운 모습으로 빼곡하게 담겨 있다. 협회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하면 1965년부터 1978년까지는 갈등 속에 협회의 뿌리가 내리던 초창기라고 부를 수 있다. 초대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타계한 후 구심점을 잃은 협회는 13년간 11명의 회장을 선임했다. 한 회장의 임기가 평균 1년 2개월로 임기의 60% 밖에 채우지 못한 것이다.

1979년부터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를 맞을 때까지 18년은 안전과 성장의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고도성장의 한가운데서 건축사들의 일거리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다.

1998년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기는 건축사의 포화기로서 시련의 극복과 국제화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 1986년 독립기념관 화재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6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이어진 국가적인 건축물재난은 건설기술관리법의 제정과 설계․감리의 분리 등 건축계의 대변화를 가져왔고, 건설업계의 설계겸업이 끈질기게 건축사와 협회를 괴롭히고 있다. 그뿐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건축사 양산 정책은 1년에 1,000여명의 건축사를 배출시켜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 중에 건축사의 소득이 최하위를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또 1997 정부의 IMF 구제금융 신청으로 인한 국가적 재난, 1999년 건축사협회의 설립자유화법 개정과 회원가입의 의무화 폐지 등은 내우외환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겹치기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교류가 1999년 UIA 가입으로부터 국제교류의 범위가 늘어나고,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3단체 통합을 시도하며, 교육원, 건축연구원, 공제회 등 협회의 업무범위가 늘어나는 등 다기화 국제화의 시대를 걷고 있다. 또 건축기본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지난 50년 회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협회가 풀어온 문제, 이룩한 성과도 많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훨씬 더 산적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어렵지만 ‘끝없는 도전자’들인 건축사들이 함께 힘을 합치면 새로운 50년에는 건축업계와 건축사들의 앞날에 더 큰 도약을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50년사 편찬위원회는 50년사 발간을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건축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시인, 소설가, 창조자, 자연과 인간조화의 선봉장, 지휘자, 고독한 수도자 등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모두 다 맞는 말이다. 대답에서 나온 것처럼 건축사는 장작이고 소금이고 공기, 문화이며 미래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대한건축사협회는 그들의 힘을 한데 모아 더 큰 힘을 만드는 충실한 조력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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